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dbury Oct 10. 2023

반쯤  

그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니 네 취향일 것 같은데.

    그놈의 반쯤이 문제였다. 빵도 반쯤 베어 먹고, 컵을 내려 놓을 때도 식탁 모서리에 반쯤 걸쳐 놓더니 결국 우리 사이도 불분명한 곳에 반쯤 걸쳐 놓고 말았다. 

    망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너의 그 말이 마치 손에 닿지 않는 책장 꼭대기 같아서 그곳에 먼지가 차곡차곡 쌓이는 줄도 몰랐다. 눈꺼풀이 아닌 눈동자가 흔들린다는 말을 뱉자니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릴 것 같지만 네 눈동자는 실제로 그랬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원망이란 감정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아픈, 마음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지만 그 모서리가 곰팡이가 피어 다 썩어가도록 꺼내어 보고 싶지는 않은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네 눈동자가 아팠구나. 그런데도 난 파스타 속을 헤집으며 주홍빛 새우만 찾고 있었다. 거기에 대고 궁색한 변명이라고 해야 했다. 뻔한 드라마 속 대사라도 읊어야 했다. 

    와인은 시키지 말았어야 했을까. 네 부은 얼굴을 더 둥글게 만드는 투명한 와인잔엔 그 시큼하면서도 텁텁한 액체조차 반쯤 담겨 너와 나의 어정쩡한 거리를 비웃듯 찰랑였다. 

    다음부턴 좀 티 안 내는 데로 때려줄래? 사는데 영 불편해서 말이야. 

    넌 ‘다니는데’라고 하지 않고, 꼭 ‘사는데’라고 말했다. 단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네 삶의 모든 부분을 말하는 것 같아 그 표현이 딱 적절하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물론 입밖에 내어 네게 말한 적은 없었다. 그건 염치없는 말이어서 더욱 말을 삼갔다. 

    네 태도는 시종일관 담담했다. 노을빛으로 물든 눈두덩이는 남들처럼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고 확실히 네 말처럼 불편해 보였다. 네 빈 잔에 물을 채워주러 온 웨이트리스가 힐끗힐끗 곁눈질하는 걸 보니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새우 꼬리 같은 게 목에 걸린 것 같이 불편했다.  

    안 먹어? 그냥 먹어. 언제부터 남들 시선 의식했다고.

    네가 소고기를 칼로 눌러 썰 때마다 선홍빛 물이 흥건히 접시 위로 흘러내렸다. 그걸 바라보는 네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렸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조명에 반사되어서인지 하얀 눈동자가 검붉게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광기마저 느껴져 도대체 네가 썰고 있는 것이 소고기인지, 누군가의 심장인지 착각이 일었다. 

한참 태연한 칼질을 하던 넌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핸드백에서 립스틱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소고기 덩어리에 칠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은 소고기처럼 보이지 않았다. 붉은 색으로 펄떡이는 심장 같았다. 

    레어로 시킬 걸 그랬어. 죽은 걸 먹으려니 영 재미가 없네. 다음번엔 스테이크 말고, 생선회 먹으러 가자. 눈동자 벌겋게 뜨고, 꼬리 퍼덕이는 것들의 살점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겠어? 그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니 네 취향일 것 같은데.

    네 목소리에서 찬 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알았다. 네 안에서 곰팡이 피고 썩어가던 원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심장이 산 채로 썰려 핏물이 흘러내리고, 눈동자가 흔들리고, 온힘을 다해 꼬리를 퍼덕이고 있지만 불가항력으로 살이 발라지는 고통을 외면해 온 나를 향한 네 입체적인 감정. 네 모든 감각을 쏟아 부은 후 다시 여러 조각으로 썰어낸 퍼즐 같은 너와 나의 관계였다. 

    실내를 가득 채우던 ‘잇 네버 엔터드 마이 마인드(It Never Entered My Mind)’가 이제 막 끝나가고 있었다. 그걸 의식했는지 넌 핸드백에 다시 립스틱을 넣고 선글라스를 꺼내 들었다. 

    반쯤 걸쳐놓은 그거. 이제 나 놓을까봐. 처음부터 그래야 했는데 너무 늦었지?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서도 떠나지 않은 건 내가 사랑과 동정을 구분 못해서였으니 거기다가 이상한 상상 섞지 마. 

    나도 너도 반쯤 걸쳐두었던 우리라는 타이틀이 불분명한 선에서 더 선명한 선으로 노선을 정확히 했다. 네 심장을 난도질했던 내 잘못과 네 책장 위 먼지 같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예쁘지 않은 감정들 그리고 무엇보다 온전치 못하고 반쯤만 내어놓은 우리의 마음들은 결국 온전한 몸을 입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가 끝났다. 

    아무 말도 못하고 파스타 속에서 찾은 새우를 꾸역꾸역 어금니로 으깨고 있는 날 향한 네 눈동자가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말은 네가 다시는 날 동정으로라도 봐 주지 않을 거란 뜻이다. 난 네가 벌겋게 칠해놓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를 바라봤고, 넌 선글라스를 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 마일스 안 좋아해. 난 엘라가 좋아.

    네가 레스토랑 문을 열고 나가 사람들 속에 가려져 반쯤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난 결심했다. 다시는 마일스의 곡은 듣지 않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너를 닮을 때, 너를 닫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