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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Dec 12. 2023

꾼 꾼 꾼

현실은 믿기 힘든 일투성이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누가 그러던데.

    소설을 쓰는 일. 누군가는 그걸 강박이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허술함으로 직조한 일종의 속임수라고 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여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야겠지만 그렇다고 배경, 인물, 사건의 연결고리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허술한 것 같이 보여도 세계관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아야 독자를 속일 수 있다. 

    완전히 사기꾼이네. 그것도 완전 범죄를 꿈꾸는.

    내 원고를 보고 친구가 말했다. 그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처음엔 정수리에 대침을 박더니 얼마 가지 않아 금세 혈이 뚫린 듯 온 머리를 짜릿하게 했다. 

    좀 더 파 보기로 한다. 현실을 망치로 산산이 다 부신 후 재직조한다. 더 깊이 판다. 거기에서 발견한 이야기는 빛에 반응하지 못하는 두더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 발달한 감각 기관을 믿어본다. 지상 동물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흙덩이를 뭉치고 흩기를 반복하다 보니 알 수 없는 형체의 무언가가 탄생한다. 그럼 이게 소설인가? 

    하하하 하하. 리듬감을 살려 읽어본다. 히히 히히히히. 입을 옆으로 쭉 째고도 읽어본다. 사기꾼의 노래는 지나가는 독자의 귀를 당겨 잡는다. 카더라 통신은 소설 세계에서 더 잘 먹힌다. 독자의 귀가 여우처럼 쫑긋 세워지면 카더라 카더라 속삭이기만 하면 된다. 귀로 한번 파고든 이야기는 뇌간을 돌아 인간의 호흡과 심장박동을 조절한다. 

    사실이 아니잖아. 너무 책임감 없는 거 아냐?

    친구가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현실은 얼마나 사실적인가 생각해 본 적 있는지. 사실이란 게 본래 절대적인 것 같아도 의외로 상대적이어서 어떤 망원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별의 크기가 달라진다. 어쩌면 모양이나 색깔이 달라질 수도. 

    그럼 넌 그런 적 없어? 현실이 소설 같을 때. 

    내가 반문했다. 그러자 친구의 눈이 작은 바퀴처럼 굴러간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방향 잃은 바퀴 두 개가 공중에서 한참을 돌다가 스키드마크를 내며 급하게 섰다. 

    맞아! 요즘 뉴스 보면 맨날 나오는 희대의 사기꾼! 그 댓글 봤어? 작가들 분발해라, 저런 범죄자도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너희는 뭐 하고 있냐. 그런 것들.

    어라, 뒷덜미가 뻐근해진다. 시원했던 머리에 다시 혈이 막힌다. 밥그릇 싸움을 하기엔 상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다. 뉴스에선 매일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알면 알수록 그리고 파면 팔수록 내가 맡지 못했던 흙냄새가 난다. 아, 이건 상도덕이 아니지. 속에서부터 질투심이 신맛을 역류시킨다. 개운치 않다. 혓바닥을 주욱 내밀고 거울을 보니 허옇게 백태가 잔뜩 껴 있다. 명치가 쓰리다. 

    내 오래된 습관에 대해 말하자면, 글쓰기 전에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그건 동종업계에서도 꽤 잘 알려진 사기 수법이다. 집과 집 사이의 걸음거리를 재고, 직접 발로 뛰어 찍어온 사진들을 참고해 상점들과 집들을 그려 넣는다. 현실을 재직조하는 건 더 치밀해야 한다. 인물들은 각자의 특징을 가져야 하는데 그들은 없었지만 있습니다, 가 되어야 한다. 때론 그 생명 없던 것들이 자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 창조자를 잡아먹기도 하니 주의할 것. 

    지도가 완성되면 여러 번의 모의실험을 거쳐 속임수의 세부 사항을 완성한다. 오후 세 시에 동네 편의점을 지나는 데에도 다 그만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기는 한순간도 허술하면 안 되니까. 의미와 의미가 꿰매어지고, 시간의 틈새를 막고, 허술한 듯 자연스럽게 사건들을 늘어놓으면 판이 완성된다. 자, 이제 사기 칠 대상을 이 세계관 그물에 유도해 넣기만 하면 되는 거다. 

    사람들이 바보냐? 그걸 믿게? 

    친구가 휴대전화 게임을 하며 말했다. 

    아, 참. 내가 말 못 했는데... 나 사실, 재벌 3세야. 할아버지께서 00 기업 창업주시거든. 

    성의 없이 던진 내 말 한 마디에 친구가 잠시 게임을 하던 손을 멈췄다.

    하하하 하하. 히히 히히히히. 뭐?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소설 쓰냐?

    친구의 웃음 소리가 휴대전화 게임 배경 음악과 뒤섞인다. 현실은 믿기 힘든 일투성이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누가 그러던데. 내 출생의 비밀은 이렇게 또다시 믿을 수 있는 독자를 찾아 땅속으로 파고든다. 두더지처럼 눈먼 상대를 만나면 사기가 되는 것이고, 내 오래된 습관으로 짜인 그물에 걸려준다면 소설 속 판타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소설 같은 현실보단 현실 같은 소설에 속는 것이 적어도 수갑 찰 일은 없을 테니 난 이쪽에 발 담가야겠다. 법적 책임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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