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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Oct 26. 2023

코(hoc) 아니, 꿈(coh)

“저기… 혹시… 실례지만… 제 코가 아니신지…”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잠에서 깨어 거울을 본 순간 비명을 질렀다. 없어졌다. 그것을 찾기 위해 서둘러 경찰국으로 향하다가 마차에서 내리는 한 신사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5급 문관 행색을 한 그것이었다. 자기보다 계급이 높아진 그것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를 무시하며 다시 사라져 버렸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공상이 심한 아이라고 불렀다. 내 입엔 늘 ‘만약에’라는 말이 붙어 다녔다. 만약에 내가 사람이 아니라 몰티즈라면, 만약에 내가 백 년 후로 시간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만약에 내가 영원히 늙지 않는다면. 키가 자라면서 이런 생각의 주인공은 점차 자아에서 타인으로, 사물로,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졌다. 길을 걸으면서도 공을 굴리듯 머리를 굴렸다. 그건 내게 아주 재미있는 놀이였다. 만약에 저 앞에 걸어가는 여자가 맨홀에 빠진다면, 빠진 맨홀로 한참 떨어지다가 푹신한 바닥에 궁둥이가 닿는다면, 거기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지하 세계를 발견한다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번져갔다. 재미있는 상상 놀이에 빠져 미친 사람처럼 혼자 실실 웃었다.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위아래로 훑으며 지나갔다. 상상 안에서는 못 갈 곳이 없고, 못 할 것도 없었다.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순간, 한계를 넘어선 기쁨에 온몸이 벼락을 맞은 듯 짜릿했다. 다행히도 상상하는 일은 내 시간을 뺏는 것 외에 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껏 상상했고, 혼자 웃었다 울었다 심각해졌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오하이오 들판에 누워 하늘을 봤다. 뭐 하나 새로운 것 없는 평범한 시골 동네에서 하늘은 무한한 상상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태양, 달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별. 그 먼 곳에 사람이 가고, 살고, 느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상상했다. 금성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칠 년에 한 번 오는 태양을 직접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정부의 정책에 따라 화성에서 복귀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상상들이 그의 머리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에드거 앨런 포 같은 환상문학 소설가의 이름을 넣어 글을 쓰기도 했는데 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거나 작품이 모두소각되어 없어진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는 환상문학 즉, 인간에게서 한계 없는 상상력이 소각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상상은 인공적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낭만파 음악과 소비에트 체제 선전을 위한 음악을 많이 썼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난해해서 어렵다고 평가받는다. 상상력을 잡아두기엔 체제의 그물은 너무 낡고 허술했다. 고골과 그런 면에서 마음이 잘 맞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드디어 예술의 상상력과 체제의 이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던 그들이 <코>라는 작품으로 만나게 된다. 

     갑자기 사라진 코를 주인공 코발료프가 찾아 헤매고, 덩치와 계급을 키운 코는 그를 피해 도망간다는 이야기이다. 설정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이 고골의 단편소설은 백여 년이 지나 쇼스타코비치를 만나면서 기묘한 오페라로 재탄생한다. 문학에 음악적 상상력이 가미되자 신음, 비명, 군중의 웅성거림, 중얼거림이 모두 노래가 되었고, 불협화음의 조화는 사회 기저에 깔린 불안을 잘 표현해 주었다. 오페라의 우아함도 사라지고 프리마돈나(여자주인공)도 없어졌다. 심지어 프리모우오모(남자주인공)는 코발료프가 아닌 그의 코다. 그는 이런 상상력을 어떻게 딱딱한 체제 안에 감출 수 있었을까. 어쩌면 고골이 사설에서 에둘러 표현했던 것처럼 그도 자신의 넘치는 상상력을 적절히 포장해 숨겼을지도 모른다. 

    러시아어로 코(hoc)는 거꾸로 읽으면 꿈(coh)이 된다고 한다. 코를 거꾸로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린 모두 고골이 보았던 꿈과 환상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상상이 가진 힘이고, 그 힘의 크기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으니 그것 또한 아이러니하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염려와는 달리 우린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큰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다시 꿈꾸고 있다.

    상상은 숨겨진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이다. 그것은 비난을 감수할 만한 용기 하나쯤 배 속에 집어넣고 해야 할 도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그것을 가둘 튼튼한 그물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잠에서 깨어 거울을 본 순간 비명을 질렀다. 없어졌다. 그것을 찾기 위해 서둘러 경찰국으로향하다가 마차에서 내리는 한 신사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5급 문관 행색을 한 그것이었다. 자기보다 계급이 높아진 그것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를 무시하며 다시 사라져 버렸다.


                                                                                    “아악!! 내 코! 내 코가 어디 갔지?”


                                                                                                                      “아니, 저것은 내 코가 아닌가!”   


                                                 “저기… 혹시… 실례지만… 제 코가 아니신지…”


               “잘못 봤소. 난 그저 나일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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