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신이 되고 싶지 않아요.
“여보!”
해거름에 길게 늘어진 남편의 그림자가 단숨에 바닥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그의 몸뚱이도 함께. 손에서 고무장갑을 벗지도 못한 채 거실로 달려갔다. 무릎으로 끌어올린 그의 상체가 자꾸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여보’라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내뱉었는지. 그건 우리의 부부생활 기간을 다 합쳐도 채우지 못할 만큼 많았다.
고무장갑 낀 손가락으로 응급전화 버튼을 눌렀지만 왜 전화가 걸리지 않는지, 작동하지 않는 건 휴대전화가 아니라 내 머리라는 걸 몇 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후에 어떻게 고무장갑을 벗었는지, 응급전화를 받은 사람에게 이 상황을 뭐라 설명했는지, 연기가 자욱하게 낀 머릿속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몇 시간 후 의사가 심장마사지를 멈추며 내게 남편의 사망 날짜와 시간을 읊어줄 때까지 난 한쪽 발엔 운동화, 다른 쪽 발엔 삼선 슬리퍼를 신고, 왼쪽 손에만 고무장갑을 낀 채 그의 곁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남편의 재산이 엄청 나다네. 그것을 노렸던 거라네. 살아 생전에 부부 사이가 안 좋았다네.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이었다네. 자식이 없어서 그런 거라네. 여자가 아이를 못 낳았다네. 그래서 그런 거라네.
강남 아파트, 금싸라기 땅 위 5층 빌딩, 수만 평의 땅. 누구의 것이 될까. 누구의 것이 될까. 수군대는 사람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네. 붉은 불길이 피어오르네.
“네가 남편 잡아 먹고도 할 말이 있냐? 내가 이래서 너희 결혼을 그렇게 반대한 거였는데. 아이고, 불쌍한. 내 아들. 내 아들만 불쌍하지. 맨날 타지로 나돌며 힘들게 돈만 벌다 죽었으니. 아이고, 불쌍한 내 아들.”
장례식장이 떠나가라 울려퍼지는 어머님의 울음 소리가 내 울음 소리를 단번에 집어 삼켰다. 혼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 슬픔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내 심장에 칼이라도 박아 넣고 싶었다. 그때, 큰 아가씨가 내 곁으로 와 앉으며 물었다.
“올케, 난 엄마하곤 달라. 엄만 올케가 워낙 없이 살다 시집와서 안스러워 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올케도 재산 노리고 내 동생 꼬셔 결혼한 거잖아.”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저 그이한테 그런 마음 품은 적 단 한번도 없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그집은 달라 하지 않을게. 하지만 올케도 양심이 있지, 이제 고작 1년 좀 넘게 살아놓고 그 많은 재산 다 꿀꺽 하려는 건 아니겠지?”
“네? 꿀꺽이라뇨, 형님, 저 정말 서운해요.”
큰아가씨는 몇 해 전 이혼하고 우리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내 남편 명의의 강남 집에 살고 있다. 남편은 재개발 할 때까지만, 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때 큰아가씨는 자신의 3살 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손에 쥔 손수건을 더 꼭 쥐었다. 지금 나에겐 무언가 붙들 것이 필요했다. 남편의 손은 이제 없으니까. 왼손 약지에 낀 결혼 반지가 없었다면 나와 그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증명할 방법은 무엇일까. 서류상 몇 줄의 글자들 말고, 침대 옆 액자에 끼워놓은 둘의 신혼여행 사진 말고. 내 몸에 남아 있는 그의 체취도 바람이 쓸어가 흐려지고, 매일 귓바퀴에 맴돌던 그의 목소리도 점점 작아지다가 벙어리가 되고 만다. 무생물만이 증명하는 우리의 관계. 이젠 사람의 감각으로 살아있다고 느낄만한 그의 흔적은 모조리 사라지고 없다.
털썩,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아주버님은 이미 어디에선가 술을 마시고 온 듯했다. 진하게 주변으로 퍼지는 술냄새 때문에 다시 정신이 혼미해졌다.
“뭘 그런 당연한 걸 물어? 제수 씨, 자기 거 아닌 걸 욕심내는 사람을 세상에선 뭐라 부르는 줄 알아요? 염치없는 사람. 그렇게 불러요. 나 참, 뭘 이렇게까지 얘길 해야 하나.”
아주버님은 습관처럼 사표를 썼다. 한 달, 두 달, 두 달 반. 그건 늘 3달을 넘긴 적이 없었다. 남편의 인맥을 총동원한 아주버님의 구직 활동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 대단한 자존심에 동생에게 직접 부탁하지도 못하고, 늘 어머님 등 뒤에 숨어 말을 건넸다.
“다들... 정말 너무들 하시네요. 그이가 왜 혼기를 놓치도록 타지로 나돌았겠어요? 진짜 그 이유를 모르셔서 이러는 거예요? 그 숨막히는 책임감의 무게,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혈연이라는 족쇄. 그이가 얼마나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지 아세요?”
젖은 목소리가 차분하지만 세밀하게 떨렸다.
“뭐? 그게 그럼 다 우리 탓이라는 거냐? 이게 남편 잡아 먹고도 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내뱉고 지랄이야, 지랄이!”
어머님의 손에 내 머리카락이 한 줌씩 뽑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위로 큰아가씨의 상스러운 말들이 더해졌다. 영정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이 흔들리는 시선 속에 간간히 스쳤다. 하얀 국화가 둘린 화환이 내 몸 위로 엎어졌다. 하얀 꽃잎이 날렸다. 마치 남편의 두툼하지만 따뜻했던 손처럼 내 몸을 덮었다.
죽는 게 나을 거야. 누군가 귀에 속삭였네. 악마의 소리일까, 사람의 소리일까.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하얀 꽃잎은 날리고, 그 위로 붉은 피 방울방울. 비릿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리네. 휘청이는 몸은 여기로 저기로.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발걸음.
사티, 사티.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네. 그 여자가 원했나? 아니, 그렇지 않네. 사티, 사티. 여신이 되려는 여자는 없다네. 슬픈 그 이름. 사티, 사티.
“죽은 남편을 따라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 알려진 김 모씨의 체내에서 환각제 성분이 검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닌 살인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돌리고...”
그 이름을 부르지 마요. 사티, 사티. 여신이 되고 싶지 않아요. 뜨거운 불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네. 까맣게 타들어가는 그 목소리. 사티, 사티. 남편을 따라 불 속에 몸을 던진 여신들의 슬픈 목소리.
*사티 제도 : 죽은 남편을 화장할 때 뛰어 들어 아내가 함께 죽는 악습. 실제로는 스스로 원하기 보단 가족이나 사회의 요청에 의해 강제로 시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