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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Jun 18. 2024

암흑의 지문(指紋)-3

인터뷰하신다면서요. 제게 궁금한 거 없으세요?

# 맛 보다.


    주요리가 나왔을 때 난 다시 손을 뻗어야만 했다. 가장 먼저 테두리를 만져 접시를 확인하고, 그다음엔 음식에 손을 댔다. 포크와 나이프만으론 음식이 어디에 놓여있는지 또 크기는 어떠한지를 알 수 없을 것 같단 판단에서였다. 피차 서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음식을 손으로 만진다 한들 흉이 될 것도 없었다.

    반면, 그의 행동은 꽤 정확했다. 차분했고, 익숙한 듯 실수 없이 포크로 단번에 찍어 칼질했다. 마치 암흑의 나라 거주자 같잖아? 얼마나 자주 오길래. 난 그가 암흑 속에서 어떻게 마치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뷰하신다면서요. 제게 궁금한 거 없으세요? 식사 시간 구십 분 중 벌써 삼십 분은 지난 것 같은데.”

    그가 먼저 입을 뗐다. 

    “그러고 싶은데 질문지를 못 들고 와서요. 보이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었겠지만. 그나저나 가장 궁금한 건… 도대체 왜이런 데서 만나자고 하신 거죠? 몹시 불편하네요.”

    “짜증나시죠? 죄송해요. 전 그저 기자님께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던 건데.”

    언성이 좀 높아졌었나 보다. 나름대로 감정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 음악도,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없는 이곳에선 내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금세 티가 났다. 그리고 감정 상태 또한 그랬다.

    “죄송합니다. 사실 제 몰골이… 오늘 좀 더러운 사치를 부리는 중이거든요.”

    “더러운 사치요?”

    “네. 원래는 매일 씻는 편이지만 오늘은 안 씻었어요. 일 년에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죠. 나에게 주는 단 하루의 자유? 뭐 그런… 너무 광고 멘트 같나? 어쨌든 이런 모습을 기자님께 보이고 싶지 않아서라고 해 두죠.”

    “전 또 목소리에 엄청 자신 있거나 아니면 반대로 외모에 엄청 자신 없거나. 둘 중 하나인 줄 알았네요.”

    솔직한 말이었다. 그러지 않고는 이런 곳에서 굳이 인터뷰하자고 할 이유가 없었다. 또 그가 대중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리가 있네요.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는 다시 장난스럽게 웃었다. 

    “단골이신가 봐요? 힘든 식사 과정에도 망설임이나 실수가 없으신 걸 보니.”

    “그런 셈이죠. 간혹 암흑을 즐겨보는 것도 재미있으니까요. 이 주위 레스토랑들, 웬만한 데는 다 알고 있지만 마음에 끌리는 데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입맛이 까다로움. 식사는 같은 곳에서. 그에 대해 알게 된 첫 번째 단서. 

    “선생님의 작품엔 다양한 감각이 아주 신선하게 표현되던데. 남성적 문체에 입힌 예민한 감각이라. 특히 미각에 대한 묘사는 대한민국 작가 중 단연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음… 기자님께서도 느끼셨을 테지만 이곳에선 시각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죠.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가장 먼저 눈으로 먹는다는 걸 아시나요? 눈으로 먼저 음식을 보면 뇌에서 아, 이 음식은 이런 맛이야. 하고 미리 가르쳐 준답니다. 학습을 통해 이미 아는 거죠. 그렇다면 오직 미각으로만 맛을 느껴야 한다면 어떨까요? 기자님께선 지금 들고 계신 음식이 무엇인지 미각만으로 구분할 수 있나요?”

    “그야 당연히…”

    난 입안에 씹고 있던 고기를 혀로 둥글게 굴려 어금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씹었다. 그런데 이게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양고기? 씹는 느낌으론 고기는 고기인데 당최 내가 무슨 고기를 씹고 있는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불안이 엄습했다. 

    “당연히… 소고기겠죠. 돼지고기는 푹 익혀야 하는 게 상식인데 육즙이 많이 나오고 피 맛도 나고, 좀 질긴 거로 봐선.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그는 자신 있게 물었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계산한 걸 말할 수밖엔 없었다. 그런데 계속 고기를 씹으면 씹을수록 육즙이 다 빠지고 나니 그 경계마저도 모호해져 갔다. 

    “그런데 아까 제 문체가 남성적이라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그거야 절도 있고, 박력 있고, 간결하면서도…”

    “아, 그런 걸 남성적 문체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런데 그 남성적이란 것의 정의는 누가 내린 거랍니까? 전 제가 남성적 문체를 사용하고 있는 줄도 몰랐네요. 작가 본인도 말이죠.”

    갑자기 그의 유독 높게 들리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는 목소리가 높은 남자가 아니라 목소리가 낮은 여자인 건가. 그런 기준이 꼭 맞는 건 아니지만 ‘보편적 내 상식선’에서 계산한 걸 말하는 거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에 대해서도 헷갈리기 시작한 건. 암흑에도 무늬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불안이 지문처럼 무늬를 그리며 엄습해 왔다.  

    “선생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무작정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라며 한 조각의 정체 모를 고기를 다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소고기일지도 모를 근육 덩어리의 일부를 의미 없이 반복해서 씹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암흑을 씹는 느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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