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 만지다.
“저에 관해 얘기하려면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그러니까… 한창 뜨거운 나이였죠. 가장 인간적인 나이랄까? 삼십육점오 세. 저는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인간적으로, 바로 그 인간적으로 계산했을 때 말입니다. 적당히 비굴해질 줄도 알고, 적당히 나와 타인을 구분할 줄도 알고, 적당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 선을 그을 줄도 알고… 뭐 그런 적당한 시절 이야기죠.”
나이는 삼십육 세 하고도 반 이상. 내가 찾아낸 단서 둘.
“뭔가를 꼭 포기해야 할 절벽에 서면 사람들은 저마다 포기하는 것이 다르단 걸 깨달았죠. 누구는 먹는 걸 포기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사람 만나는 걸 포기한다고 했고요. 그런데 저는 늘 책 읽는 걸 포기하는 편이었습니다.”
“의외네요. 그래도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되셨는데.”
이상하다. 그에게선 음식을 씹는 소리도, 삼키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유일하게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그것도 여전히 ‘후룹’이 아닌 ‘투룹’에 가까운 소리였다. 내 착각일까. 내친 김에 물었다.
“저기, 중요한 이야기 중에 죄송한데요. 이곳 메뉴는 한 가지인가요? 가령 스테이크 같은.”
“그럴 리가요. 두 개의 코스 요리가 있습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A 코스로 미리 주문해 봤는데 입맛에 안 맞으시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난 차마, 그런데 왜 혀를 굴려 마시는 소리만 들리는지에 관해선 묻지 못했다. 분명 포크와 나이프가 접시에 닿는 소리는 들리는데 이상한 현상이었다.
“다음 번에 올 일이 생기면 다른 것도 먹어보려고요.”
“아, 네. 그럼 계속할까요? 흠… 전 늘 조각 잠을 잤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두통에 시달렸죠. 그래서인지 책을 보는 게 몹시 힘들었습니다. 선천적으로 눈이 나쁘기도 하고요. 눈보다 다른 감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게 아마 그때쯤이었을 겁니다.”
“왠지 전 그게 해피엔딩이 아니라 네버엔딩이었으면 좋겠네요.”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었고, 난 내 손을 테이블에서 아주 조금씩 앞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할만한 속도로 거미가 기어가듯 손가락을 뻗어갔다. 그를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례가 되겠지만 눈으로 그를 볼 수 없고, 심지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데 그의 실체를 증명하려면 만져보는 것밖엔 방법이 없었다. 혹시나 내 손에 그의 손이라도 닿는다면 물잔을 찾다가 실수했다고 대충 얼버무리면 될 일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감각이란 게 참 신묘해서 한 가지를 지우면 다른 녀석들이 더 높게 고개를 치켜듭니다. 그래서 굳이 한 가지 감각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감각들로 느끼는 게 가능해지는 거죠. 제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요.”
“네.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선생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모두 한 가지씩의 감각들이 결여되어 있죠. 그래서 평론가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현대인의 결핍에 대해 지금껏 이렇게 잘 표현한 작가가 없다고들 하잖아요.”
그때였다. 거미처럼 움직이던 내 손에 무언가 닿은 것이. 그런데 순간 온몸의 감각들이 까무러치듯 솟아올랐다. 기다랗고, 가늘고… 하지만 체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것은 분명 움직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