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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Jul 02. 2024

암흑의 지문(指紋)-5

“티나는 정말 제6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걸까요?”

# 새로운 감각


    사람은 극도의 공포에 들어갔을 때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한다. 모든 소리를 꿀꺽 삼켜버린 것처럼 목젖이 천천히 올랐다가 떨어진다. 온몸에 흐르는 찬 기운에 털들이 바짝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전율한다. 온몸이 젖어간다. 점점 굳어간다. 불안이 암흑의 색깔로 분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적응이 안 된다. 

    “기자님?”

    그가 날 불렀다. 하지만 한번 기어들어 간 소리는 좀처럼 나오려 하질 않았다. 

    “기자님, 어디 불편하세요?”

    “아…”

    그건 마치 가위에 눌려 있다가 겨우 깨어나오는 한 음절 같았다. 그제야 굳었던 몸도 다시 풀리고, 목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뇨. 그냥 좀 놀라서.”   

    “뭐에 놀라셨길래.”

    내 손에 닿았던 그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가 먹고 있는 것? 아니면 그의 신체 일부? 

    “그냥… 음식이 생각보다 특이해서.”

    좀 전에 그것이 닿았던 자리를 손으로 쓸어봤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전율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 사람인 걸까? 

    “어둠에 적응이 좀 되셨나 봅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단 빠르시네요. 기자님이라서 그러신가? 늘 사람들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직업이니까. 감각에 좀 더 예민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의 장난스러운 웃음이 더는 장난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구두 속 발가락이 다 오그라들었다. 긴장하지 않으려 해도 목소리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다른 분들하고도 자주 오시나 봐요?”

    “자주는 아니고, 지인들이랑 가끔 옵니다. 저도 직업병이 있어서.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들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건 아주 재미있거든요. 그리고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들, 대화들. 이런 것들은 제가 글을 쓰는데 큰 영감을 주죠.”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데요?”

    “그게 궁금하신가요? 진짜 제가 누군지 궁금하신 건 아니고요?”

    “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오늘 저 인터뷰 하러 오셨잖아요. 그러니 제가 누군지 당연히 궁금해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틀렸나요?”

    “아, 네.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저에 대해서 잘 알아가고 계십니까?”

    난 그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그는 이랬다. 남자, 삼십 대 후반, 입맛이 까다롭고, 레스토랑은 정해 놓은 곳만 선호함. 그리고 일반적인 정보들. 유명 소설가, 인간의 결핍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 그 인간의 결핍을 표현하기 위해 소설 속 주인공들의 감각을 하나씩 잘라냄. 

    “선생님의 소설 주인공처럼 아주 난해하네요. 솔직한 제 대답을 드리자면요.”

    “난해하다라… 어떤 점이요?”

    난 점점 그에게 말려들고 있다. 하지만 질문을 해야 한다. A의 실체를 밝히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선 형식적 질문이 아닌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질문들이 필요하다. 

     “선생님의 이번 화제작 <파라독스>의 주인공 티나는 청각을 잃은 대신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또 하나의 감각을 지니게 됐지요. 우리가 흔히 육감, 제6의 감각이라고 부르는 감각 말입니다. 단순히 그냥 그런 것 같아. 정도를 넘어서 보다 실질적인 감각으로. 어찌나 실감 나는 표현들이었는지. 독자들도 저와 같았겠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마치 직접 경험해 보신 것처럼요.”

    난 특별히 ‘직접’에 힘주어 말했다. 

    “티나라는 캐릭터를 설정할 때 전 여느 때와 달리 인간의 역설적인 모습들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알 수 없는. 인간뿐 아니라 역사도 그렇고. 전 그것이 인간사의 가장 큰 파라독스, 역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티나라면 어떨까. 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티나는 그 동네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을 경찰들보다 더 잘 파헤쳐 나가죠. 사람들은 티나가 한 가지 감각이 결여된 것을 마치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것처럼 치부해 버립니다. 하지만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듯이 인간의 감각은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른 감각들이 더 예민하게 살아나곤 하죠. 그중 어떤 경우엔 여섯 번째 감각이 발달하기도 하고요.”

    그는 자신의 소설 이야기로 내 질문의 답을 교묘히 비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내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답을 티나 이야기로 포장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뿐이었다. 

    “표절이란 말도 많습니다. 영화 <식스 센스>나 드라마 같은 데에서 무수히 사용되는 소재니까요. 물론 묘사 쪽으론 충분히 신선하고 독특하단 독보적 평을 듣고 계시지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표절 문제는 자칫 예민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를 알려면 그 심리의 균형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예상이 적중했는지 그가 나이프와 포크를 접시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공간이 공기를 먹는다는 말이 맞을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은 딱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일초, 이 초, 삼 초, 사 초, 오 초… 고기를 써는 내 손마저 뻣뻣하게 느껴졌다. 

    “티나는 정말 제6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걸까요?”

    소리의 암흑을 뚫고 그가 말했다. 더구나 내 질문의 답을 또 비껴가는 질문이었다.

    “그건 작가인 선생님만이 아시겠죠. 하지만 지금 와서 티나가 그런 새로운 감각을 지니지 않았다고 정정하신다면 티나는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난 조금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바로 그를 몰아붙였다.

    “기자님은 그 새로운 감각을 믿으시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어떤 이는 그런 감각 따윈 애초에 없던 거로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럼 우린 ‘인기척’, ‘여자의 육감’ 같은 감각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이번엔 내가 시간을 멈췄다. 일초, 이 초, 삼 초, 사 초, 오 초… 그가 다시 유리잔을 들어 ‘투룹’하고 액체를 마셨다. 이번엔 그 소리가 확실하게 귀에 거슬렸기에 다음 이야기를 빨리 꺼내야 할 것만 같았다. 

    “동의합니다. 어느 정도는. 그럼 선생님께서는 사람에게 또 다른 감각 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가령… 기다랗고, 가느다란…”

    “더듬이 같은?”

    대번에 터져 나온 그의 답에 머리가 찌르르해졌다. 맞다. 내 손을 스친 것은 더듬이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 더듬이는 그의 것인지, 아니면 그가 먹고 있는 음식의 것인지. 난 다시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더듬이라. 참 기발하네요. 사람에게 더듬이라니. 정말 선생님의 상상력을 따라갈 수 없겠어요.  그러니 그런 신선하고 기발한 묘사가 가능했던 거겠죠?”

    “어쩌면 사람에겐 모두 숨겨진 감각 하나쯤, 가령 눈에 보이지 않는 더듬이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둠에 묻어 놓고 꺼내 쓰질 못 할뿐.  불안을 잘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미처 모르죠. 이런 걸 찾아내는 게 작가의 할 일인데 기발하다 하시니…”

    그의 피식 웃는 소리에 이마가 간질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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