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그럴까? 그 애처럼 말이야.
나다 씨는 내리기 위해 문 쪽으로 몸을 밀었다. 한가한 오후 시간인데도 지하철 안은 억지로 지퍼를 닫아 잠근 여행 가방 같았다.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고작 2m 밖에 안 되는, 문까지 도달하는 일조차 고산지대를 오르듯 몇 배는 더 큰 힘으로 몸을 밀어붙여야 했다. 시외 구간이어서인지 다음 역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에게서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의 냄새가 났다. 나다 씨는 그 냄새가 몸에 붙기 전에 얼른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 사람들의 몸이 자기 쪽으로 바투 붙었다. 척추를 길게 늘여 최대한 문 쪽에 몸을 붙였다. 그리고 그 자세로 열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오롯이 서 있었다.
쇠 손잡이를 잡은 손에서도 시큼털털한 냄새가 났다. 나다 씨는 그 냄새가 소름 끼쳤다. 누군가의 피 냄새 같아서였다. 그래서 얼른 손잡이에서 손을 떼어 바지 옆선에 문질러 닦았다.
열차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내내 출입문에 달린 작고 기다란 창으로 나다 씨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둘은 마주 봤다. 그런데 한 쪽은 환한 불빛 아래에 시간이 멈춘 듯 있었고, 저쪽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당근... 맞죠?”
남자가 먼저 나다 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삼십 대 중반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는 한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 팔 맨투맨 티와 양쪽으로 큰 주머니가 달린 검은색 카고바지를 입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청각, 언어 장애를 가진 나다 씨는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하여 의뢰인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의뢰인이 다가와 확인을 요청하면 간단한 묵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는 거로 일을 시작했다.
나다 씨는 이 일이 자신에게 딱 맞다고 생각했다. 의뢰인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으니 더 안심하는 듯했다. 들을 수 없는 귀로 듣는, 아이러니한 나다 씨의 직업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시간 판매자’ 정도가 되겠다.
그들은 당근 마켓이란 중고시장을 통해 원하는 만큼 나다 씨의 시간을 샀다. 한 시간에 오만 원이다. 물론 교통비는 별도다. 장소는 공공장소 어디든 가능하고, 함께 걷거나 먹으면서도 진행할 수 있다. 그저 의뢰인이 이야기할 때 정해진 시간만큼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정말 안 들리시는 것 맞아요?”
둘은 외진 강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50m 정도 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의뢰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는 대부분 외부에 공개되기 불편한 이야기이기에 대화 장소는 한적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남자가 나다 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사실 나다 씨는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며 대강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순 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그게 그들이 나다 씨에게 돈을 지불하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아무 감정과 표정 없이 껌뻑이는 나다 씨의 눈을 본 남자는 안심한 듯 핸드폰으로 딱 한 시간 알람을 맞춰 놓고서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아주 깊이 품어온 이야기인 듯 시선을 멀리 던지며 손을 허벅지 위에 그러모았다.
“한... 칠 년쯤 됐나? 그 애를 처음 본 게. 뭔가 힘든 일이 있는지 혼자 여기에 앉아서 울고 있더라고. 나도 그날 기분이 안 좋아서 강바람이나 쐴까 하며 나왔었는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애에게 눈이 갔지.”
나다 씨는 남자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그의 가늘게 찢어진 입술 선은 유독 짙어서 더 눈길이 갔다. 남자는 가끔 고개를 숙였다 젖혔다 하는 것 외엔 내내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핸드폰을 켜서 누군가에게 전화하려는 것 같았어. 난 궁금증이 일었지. 애인한테일까? 아니면 부모님께? 그것도 아니면 친구? 그런데 왜 그런 묘한 느낌 있잖아. 그냥 전화 걸 데가 없는 것 같은. 아무 데도, 누구에게도.”
의뢰인을 대하는 데에 나다 씨는 나름의 규칙이 세 가지 있었다. 첫 번째, 눈을 의뢰인에게서 떼지 않을 것. 두 번째, 어떤 상황에서도 신체 접촉을 하지 않을 것. 세 번째,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더라도 내색하지 않을 것. 물론 누군가는 들리지 않는데 어떤 감정이 느껴지겠냐 할인지도 모르겠지만 인간의 감정은 화학 반응처럼 자연스레 생겨나기 때문에 이 점을 가장 유념해 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의뢰인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어깨를 토닥이거나 등을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는 행동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나다 씨는 언제나 그런 걸 주제넘은 행동으로 치부했다.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 나다 씨는 이 정도의 선을 늘 염두에 두었다.
다시 한번 그 규칙들을 머릿속에 되새기고 있는데 남자가 나다 씨 쪽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역광 탓에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다 씨는 눈을 더 가늘게 뜨고 집중하려 손차양을 만들었다. 그래도 그의 입술에 초점이 맞질 않자 몸을 뒤로 살짝 빼 옆 얼굴을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드디어 적당한 각도를 찾은 순간, 나다 씨는 우연히 짙은 입술 선 끝이 올라간 걸 봤다. 하지만 그것은 금세 다시 내려앉아서 착각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남자의 입술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먼저 그 애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어. 대화 상대가 필요하냐고 물었지. 어땠을 것 같아? 당연히 놀라서 움찔했지. 왜 아니겠어? 모르는 남자가 다가와서 말을 거는데. 그 애는 온몸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 그래서 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서 대화를 시도했어. 수면 위로 내리는 석양이 너무 예쁘지 않냐는 시답지 않은 말에서부터 그날 내가 먹은 음식이 뭔지, 내가 강가엔 왜 나왔는지까지 그냥 할 수 있는 말들은 다 주절거렸던 것 같아.”
거기까지 말하고 남자는 다시 몸을 강가 쪽으로 돌려 앉았다. 그제야 편하게 그의 입술이며 전체적인 얼굴까지 집중할 수 있었다. 얼추 약속된 시간의 절반이 된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남자가 이야기 중간에 몸을 나다 씨 쪽으로 틀어 앉을 때마다 역광 때문에 입술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는 좀 먹은 스웨터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제일 재미있었던 건 말이야. 그 애가 근본적으로 대화를 할 수 없는 애더라고. 왜인지 궁금해?”
역광 속에 겨우 잡은 남자의 짙은 입술 선 끝이 또다시 올라간 게 보였다. 그리고 나다 씨는 그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을 읽었다.
“벙.어.리.”
남자의 입술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다 씨는 온몸에 돋는 요철을 가리기 위해 두 팔을 서로 감싸 안았다. 세 번째, 어떠한 감정이 느껴지더라도 내색하지 않을 것. 나다 씨는 그 규칙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더 집중했다.
“너도 그럴까? 그 애처럼 말이야. 조용히 시들어가는 모습이. 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
그때 남자의 핸드폰이 1시간 알람 종료를 알리며 진동했다. 벤치를 타고 그 울림이 나다 씨의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제 일을 마쳐야 할 시간이었다. 나다 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를 향해 인사하고 재빨리 돌아섰다. 끝까지 모른 척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50m 앞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닿지 않을 세계에 있는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나다 씨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군중 속 하나가 되어 온전히 묻혔을 때에 얼른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출입문에 달린 작고 기다란 창으로 두 명의 나다 씨가 마주 보고 있다. 둘은 같은 얼굴이지만 배경은 많이 달라 보였다. 이쪽은 환한 불빛과 멈춘 시간 속에 있었고, 저쪽은 어두운 터널과 함께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쪽 배경 속에는 나다 씨 뒤편으로 한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 팔 맨투맨 티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짙은 입술 선은 어두운 터널 배경에서도 눈에 잘 띄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무겁게 가라앉은 감정의 냄새와 누군가의 피 냄새, 그것들의 발원지는 바로 그 남자였다.
나다 씨는 자신이 정해 놓은 세 번째 규칙을 잊지 않으려 창 저편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손에 쥔 핸드폰으로 조용히 긴급 전화 앱 버튼을 눌렀다. 열차는 다음 역에 도착하며 부드럽게 속도를 줄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