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디니가 뜨는 행성

오늘 태양이 세 개나 뜬다더군요.

by Boradbury

“이 집에서 제일 비싼 거로 한 다발 만들어 주시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일이 벌써 끝난 겁니까?”

“날이 더우니까. 이런 날은 일하기도 싫고.”

꽃집 주인인 앨런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은 듯한 앳된 얼굴의 사내였다. 생김새도 아이돌 가수 못지않아서 그의 가게는 늘 소녀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편이 좋았다. 편하게 남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조금은 소녀들의 생기가 내게 묻는 것 같아 과거로 시간 여행하듯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다.

앨런은 냉장고에서 몇 가지 어울릴만한 꽃을 고르고, 그것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지 눈동자를 굴리다가 뭔가 쓸만한 생각이 떠오르면 약간 두꺼운 아랫입술을 비스듬히 깨물곤 했다. 때론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눈동자가 가운데로 몰려 눈이 하나 달린 외계인처럼 보인다는 걸 그는 아는지 모르겠다.

“그거 보셨어요? 오늘 태양이 세 개나 뜬다더군요.”

그가 꽃가지들을 잘라내며 내 쪽으로 말을 던졌다. 그의 목소리는 새로운 종류의 꽃을 발견한 사람처럼 살짝 톤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 내 답은 그 설렘을 가득 채운 풍선에 아주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 말았다.

“고작 해 봤자 환일현상일 거요. 착시는 가짜일 뿐 진짜가 아니죠.”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앨런은 잘라낸 가지들을 정리하며 한층 더 높아진 톤으로 말했다.

“오... 제가 오늘은 뭔가 대단한 단서를 잡은 것 같은데요? 그럼 진짜를 본 적 있어요?”

“그럼요, 당연히.”

통유리 쪽으로 몸을 가까이 붙여 섰다. 그러자 그가 잠시 만지던 꽃을 내려놓고, 커튼을 오른쪽 끝까지 걷어 주었다.

“하늘을 불태우는 태양, 그 태양을 훔쳐 물속에 숨긴 레만 호수 그리고 그 열기를 간직한 돌담. 스위스 라보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죠. 세 개의 태양이 키운 포도로 만든 와인의 맛을 보면서 노을을 바라보면...”

“에이, 그거야말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 가짜고요. 진짜를 얘기해 주시는 줄 알고 열심히 들었는데... 정말 이러깁니까?”

시들해진 앨런의 목소리 위로 옅은 살구색과 흰색의 왁스지가 가위로 거칠게 잘려 나갔다. 왠지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결국 말해줘야 하는 걸까. 잠시 망설이다가 유리창에 얼굴까지 바싹 붙여 이글거리는 태양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양손으로 팔을 겹쳐 모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진짜는... 여기서 이십이억 광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있죠. 그곳엔 세 개의 태양이 뜬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과학 뉴스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신기하네요. 하지만 태양이 하나만 떠도 이렇게 더운데 세 개나 뜨는 행성은 얼마나 뜨거울까요?”

줄로 꽉 묶은 꽃들이 두 장으로 겹쳐진 왁스지 위에 가지런히 누웠다. 그리고 앨런은 다양한 크기와 색의 리본들을 이것저것 대어보다가 은빛 섞인 연보라색 리본을 필요한 길이만큼 잘라냈다.

“하늘엔 커다란 태양이 보이고, 아주 멀게 작은 태양 두 개가 눈동자처럼 붙어 있다지요. 암석 위로 떨어지는 그 빛이 지구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고. 뭐랄까... 붉은 것 같기도 하면서 노랗게, 아니 그보다 더 주황빛이 도는...”

“태양 빛이 찬란할지, 무슨 색으로 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그저 지금 이곳도 너무 뜨거워서 숨 쉴 수 없을 지경인데 태양이 세 개나 뜨는 곳에선 어떻게 생명체가 살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만약에 어떤 생명체가 산다면 말이죠. 너무 허무맹랑한가요? 사실, 제가 이래 봬도 천문학도랍니다. 별에 관해 관심이 아주 많아요. 놀라셨죠?”

몰랐다. 앨런이 천문학도였는지. 그렇게 자주 드나들면서도 왜 몰랐을까.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앞에 그는 이제 막 리본을 잘라 완성한 꽃다발을 들이밀었다.

“자, 다 됐어요. 어때요?”

초록색 유칼립투스와 푸른 에렌지움 사이에 커다란 얼굴을 한 후디니 장미 세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것 같기도 하면서 노랗게, 아니 그보다 더 주황빛이 도는. 맞나요? 제가 또 손님 주문은 정확하게 맞추는 편이라서요. 그리고... 오늘은 당신이 이곳, 초록별에 온 아주 특별한 날이니까.”

맞아, 이 색이었어! 이제야 기억난다. 세 개의 태양이 떠 있던, 나의 행성을 닮은 후디니 꽃다발이 드디어 내 품에 안겨 뜨겁게 빛나고 있다.


Screenshot_20230820_110454_Gallery.jpg


keyword
이전 17화세 번째 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