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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시 감별사 Oct 29. 2022

안동 그리고 한옥의 재발견

3-1 안동 소도시에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 

경주 여행책자 작업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출판사에서 안동까지 묶어서 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예정에 없었던 안동 방문은 그렇게 시작됐다. 빠른 시간 내 여행 가이드북 내용을 취재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방문했기 때문에 안동은 첫 방문부터 철저히 유명한 명소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일정으로 빠듯하게 계획을 짰다. 


경주에서는 장기적으로 머물 집도 구하고 천천히 즐기면서 다녔기에 경주와 좀 더 깊이 사랑에 빠질 수 있었는데 안동은 정들기도 전에 온전히 일을 위해 방문한 셈이다. 렌트카도 빌리고 택시투어까지 예약하면서 꼼꼼히 동선을 짰다. 정해진 시간에 가능한 많은 곳을 다니기 위해서 였다. 


도착 첫날 부용대를 시작으로 병산서원, 안동문화관광단지, 구시장(찜닭골목) 등을 다녔다. 5월말 경이었는데 날씨마저 완전 여름처럼 더워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둘째날은 더 바빴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지례예술촌을 가려고 나섰는데 지도에는 가까워보였는데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길에서 진을 빼야했다. 안동은 국내 시, 군단위 지자체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안동호와 임하호 댐으로 형성된 두 개의 큰 호수도 있어 시내 외곽까지 움직이려면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미리 예약해둔 택시투어도 뒤늦게 시작했다. 다만 길을 잘 아는 운전기사와 다녀 당일 안동소주박물관, 임청각, 농암종택, 이육사문학관, 군자마을, 이천동석불, 봉정사를 거쳐 하회마을까지 많은 곳을 손쉽게 갈 수 있었다. 


3일째는 하회마을 안을 꼼꼼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회마을 한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하회마을 여기 저기를 다녔다. 이렇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바쁘게 다니다니 보니 주요 관광지를 다닐 때만해도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내는 가이드이니 애정을 갖고 취재를 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에 점점 내 시선을 사로 잡는 것이 생겼다. 바로 안동의 ‘한옥’이었다. 사실 경주에도 좋은 한옥들이 많았지만 안동의 한옥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아도 기품과 멋이 가득했다. 사극을 즐기는 내게는 드라마 속의 장소들을 뚝 떼어 놓은 것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다. 실제 많은 사극이 안동에서 촬영된다. 

첫날 숙소였던 수애당. 둘째 날 숙소였던 하회마을의 락고재는 말할 것도 없고 지례예술촌과 농암종택, 군자마을의 한옥, 하회마을 내에 있던 많은 고택들까지 안동으로의 여행은 ‘한옥여행’이었다.  


수애당은 솟을 대문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입구 풍경부터 시선을 사로 잡았다. 밤에 들어갈 때도 멋있었는데 이른 아침 물안개에 쌓인 솟을 대문 풍경은 금새 사극의 한 장면으로 나를 이끌었다. 최고의 한옥 건축재라고 하는 춘양목으로 지어진 기둥과 멋진 대들보도 놀라웠다. 1900년대 초 지어진 한옥이라 사랑채와 안채, 바깥채가 디귿자를 이루고 있고 사랑채와 대청마루까지 합친 메인 건물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규모가 컸다.  


거기에 세심하고 싹싹한 안주인의 응대와 대청마루에 차려준 아침식사도 감동이었다. 마음이 바쁜 와중에도 경기도에서 안동의 종가집으로 결혼해서 온 안주인의 개인사도 들었다. 그 큰 저택을 바깥주인과 함께 두 분이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정성을 들여야 이런 고택을 깔끔하게 운영할 수 있을까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비록 욕실이 밖에 있어 이용하는 데 불편은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집이 지어진 원형의 분위기대로 보존되는 것이기에 불편함은 수애당에 갖는 찬사에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어 지례예술촌에 갈 때는 개기일식의 한 종류인 금환일식(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렸으나 태양의 둘레가 남아 금반지처럼 금빛 테두리가 남는 현상)을 관찰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사실 당시 금환일식이 일어난다고 뉴스 등에 보도가 되었으나 해가 뜨는 아침이라 직접 관찰은 어렵다고 했는데 나는 길을 잘못 들어 물안개가 가득 찬 임하호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물안개 때문에 빛이 차단되어 희미하게나마 개기일식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무척 신비스러운 경험이었다. (당시 찍은 사진을 지금 다시 보니 여전히 신기하다). 


그 해 초에 방영된 김수현, 한가인 주연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즐겨봤던 덕분인지 사극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으면 이미 시간도 많이 흘러 포기하고 돌아서 나올만 한데 무슨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에 휩싸인 건지 꾸역꾸역 그 물안개를 뚫고 지례예술촌까지 찾아갔다. 물안개가 잔뜩 낀 숲속에 나타난 지례예술촌은 기대 이상이었다. 숲이 주는 고즈넉함과 호수 옆의 아련함까지 갖춘 곳이었다. 


지례예술촌은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마을이다.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가 댐 건설로 인해 수목될 처지에 놓이자 현 촌장인 김원길 씨가 1986년 수몰지에 있던 의성김씨 지촌파의 종택과 서당, 제청 등 건물 10채를 마을 뒷산자락에 옮겨 지으면서 생긴 곳이다. 옮겨짓긴 했지만 원래 있던 종택 등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다. 지금은 숙박을 해야만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지만 당시엔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왔다니까 촌장께서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셨다. 요즘 이곳은 MZ세대들에게 한옥 창을 열어 밖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있는 명소로 꼽힌다. 


둘째 날 숙박했던 하회마을의 락고재는 고택을 리뉴얼한 한옥호텔로 객실 내에서 개별 욕실과 화장실을 두었다. 서울 북촌의 락고재와 함께 운영되는 곳이다. 한옥의 고풍스러움과 고즈넉함에 편의성을 더한 숙소였다. 요즘에는 침대까지 갖춘 더 현대화된 한옥호텔도 많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한옥의 원형을 가능한 한 살리면서 편의성을 더한 곳이어서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있었다. 요와 이불이 도톰하고 고급졌다. 정해진 시간에 아침식사를 평상이나 마루에 차려주는데 4개의 객실에 머무는 게스트들이 비슷한 시간대에 나와 각자의 조식상이 차려진 마루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곳에서는 부용대와 솔숲이 가까워 늦은 저녁이나 이른 아침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농암종택은 농암 이현보(1467-1555)의 종택이다. 사간원정언이었던 이현보는 1504년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이다. 원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는데 이곳저곳 흩어져 이건된 종택과 사당 등을 문중의 종손이 현재 위치로 모아 옮겨놓았다. 이곳은 99칸 대가집으로서의 한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본채 건물 외에도 정자도 많아 한옥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농암종택 부근이 주목받았던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촬영지여서 지금은 더욱 유명한 곳이 되었다.   

   

안동 첫 방문에서 받았던 한옥에 대한 놀라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애정으로 바뀌었다. 한옥과 관련된 책도 찾아보고 일부러 소도시에 가서는 한옥체험숙소를 선택해 머물러 보기도 했다. 한옥은 비슷한 듯해도 지역마다 모양을 조금씩 달리한다. 기와지붕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과 툇마루에 앉거나 창을 열고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을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안동에서도 병산서원 만교당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만대루가 있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대청의 창까지 열어두어 처마 밑의 그늘은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수애당에서도 안주인이 알려준 마루중간방이 있는 마루에 앉아 가만히 집안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분주한 안주인의 움직임 외에는 주변 자연과 건축물이 동화되어 나지막한 울림을 주던 분위기는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첫 방문 때는 못했지만 이후 하회마을의 북촌댁에 하룻밤 머물렀던 적이 있다.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으로 고택이 가진 중후한 아름다움도 감동적이었지만 고택을 원형 대로 보존하기 위해 직접 관리하며 가꾸는 것은 물론 영어 공부까지 하며 아침식사 후 게스트들에게 1시간동안 고택 구석구석을 시켜주시던 고택 주인의 모습은 더욱 감동이었다. 현대인들에게 불편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고택을 아끼며 가꾸는 분들의 뚝심있는 고집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안동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한옥과 한옥을 가꾸는 후손들이 아닐까 싶다. 한옥으로 인해 안동에 대한 내 애정도도 ‘그린라이트’가 되었다. 이는 이후 서울에서 작은 한옥을 얻어 사무실 겸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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