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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시 감별사 Oct 29. 2022

남해안 유토피아

2-2 하동 남해안으로 가는 길목 

스물 다섯, 여행업계에 대한 소식과 이슈를 전하는 여행신문에 입사하면서 ‘일’로서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여행에 대한 내 로망은 그 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방학이면 친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동생들과 다녔다. 본격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혼자서 고모가 계신 거제도에 갔던 때가 아닌가 싶다. 


막내 고모는 당시 고모부의 직업 때문에 경상도의 여러 도시를 3-4년에 한 번씩 옮겨 다니고 있었다. 나와 딱 10살 차이가 나는 막내 고모는 어렸을 때 함께 자란(?) 추억 때문인지 결혼 이후 방학이면 늘 나를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고모가 10살에 내가 태어났고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내가 할머니 댁에서 키워졌다). 


고모네 첫 방문지는 울산이었고 두 번째는 거제도였다. 세 번째는 삼천포(지금의 사천)였다. 네 번째는 필리핀이었는데 대학졸업반이었던 나는 거기까지 갔다. 그곳에서는 무려 9개월을 머물렀고 다녀와서 1년 후 여행신문에 입사를 했다. 돌이켜 보건데 여행에 대한 내 욕망을 깨운 7할은 막내 고모 덕분이었던 거 같다. 그녀는 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특히 거제에 방문했던 기억이 강렬히 남아있다. 고모가 보여준 남해안의 겨울 풍경이 너무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약 10일간 고모 네에서 머물렀다. 겨울이라서 외출을 많이 한 것도 아니었다. 단 하루 멀리서 온 내게 거제도를 구경시켜 준다고 고모가 자차를 가진 이웃의 도움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거제를 한 바퀴 돌았다. 


어디를 갔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지금 지도를 보며 짐작하건데 거제읍에서 남쪽으로 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여차-홍포 해안도로를 지나갔던 것 같다. 이 도로에서는 대병대도, 소병대도, 대매물도, 소매물도, 어유도, 가왕도, 가익도 등 환상적인 거제의 다도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몽돌해수욕장에서 고모와 찍은 사진 몇 장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이 도로를 따라 이동했을 거라 멋대로 추측한다. 


따스한 겨울 햇살이 반짝이던 윤슬이 무척 황홀했다. 너무 아름다워 차가 달리는 내내 넋을 잃고 바라봤던 거 같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어우러진 남해안의 보석같은 풍경은 그 당시 마음만 조용히 들끓던 사춘기 소녀에게 유토피아적인 풍경으로 각인되었다. 그 이후로 무언가 심난해질 때면 그날 본 거제의 다도해 풍경을 떠올리며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졌으니까.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 외에도 남해안의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하동의 남쪽엔 남해대교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으나 한때 섬이었던 남해군이 있고 옆으론 여수와 사천시와도 이웃하고 있다. 남해안 다도해로 가는 한 가운데에 하동이 위치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어릴 적 유토피아적인 풍경으로 남아있는 곳을 1시간 내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다. 게다가 경상도와 전라도의 같으면서도 다른 남해안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방을 다니면서 남해안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남해, 통영, 여수, 고흥, 목포 등 어느 곳이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원래 이 바다는 불과 400여 년 전 이순신 장군이 오가며 왜군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던 같은 바다인데 현대에 와서 어쩌다 지역감정이 도드라졌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결국 오해나 편견을 해결하는 것은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동에서 순천과 진주, 남해군 등을 오가며 여행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교감의 중요성을 떠올려 본다. 


최근 남해안을 좀 더 집중적으로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2019년 겨울 남편이 진주로 발령을 받으며 약 1년간 가 있었는데 처음 진주로 내려갈 때 내가 남편보다 더 좋아했다. 남편 숙소를 거점으로 삼아 내가 주변 여기 저기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2020년 신년 연휴기간 동안 진주에 머무르면서 관광안내센터에서 남해안관광지도를 하나 갖고 와서는 나만의 ‘남해안 방문의 해’로 정하고선 혼자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그 꿈은 모두 다 알다시피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면서 혼자만의 꿈으로만 남았다. 


남편이 진주에서 머무르던 1년동안 나는 5월에 한 번 더 진주를 방문했고 하루만 시간을 내어 남해군만 돌아보았을 뿐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방문객이 잘못하여 남편을 감염시키고 남편직장까지 피해를 끼칠까 염려되어 자주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게 경남은 미지의 세계로 여전히 남아 있다. 언젠가는 남해안을 돌아보고 잠시 머물러볼 꿈을 다시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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