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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시 감별사 Oct 29. 2022

함께 일할 파트너를 만나기

1-6 경주 소도시에서의 비즈니스 

혼자 일을 하다 사업으로 발전시키게 되는 경우 가장 어렵고도 힘든 점이 함께 일할 사람들을 만나 조직을 꾸리는 거다. 혼자 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봤자 일의 한계가 있다. 개인 혼자서는 유지조차 힘들어 질 수 있다. 일을 계속 발전시키고 싶으면 최소한이라도 조직으로 만들어 굴러가야 지속가능한 사업이 된다. 


하지만 함께 일할 사람들을 만나고 지속시킨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과제였다. 아니 구인을 하려고 해도 작은 회사를 뭘 보고 올 것인가? 게다가 함께 일할 분의 성장을 기다리기에는 현재 닥친 일조차 해치우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어떤 사람을 뽑아서 함께 일을 하도록 시간과 노력을 맞추어 갈 것인가. 일이나 함께 할 수 있기는 하는 건가. 늘 이 문제 앞에선 답 없는 물음만 되돌이할 뿐이었다. 


지금은 소중한 동반자인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6개월 경주 체류를 위해 집을 알아보던 때였다. 당시 그녀는 내가 경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구독을 하고 있는 경주시 블로그를 운영하던 프리랜서 였다. 우연히 내가 문의하기 위해 남긴 댓글을 보고 경주 여행책을 쓰기 위해 경주를 오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본인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해서 만났다. 만남 첫 날 나에게 비싼 밥을 샀다. 경주에 관심을 갖고 알리려고 하는 것이 고맙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와 나이 차이는 조금 나지만 혼자 취재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가능하면 함께 다니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지방을 다녀보면 알지만 주중의 지방 관광지는 늘 조용하다. 취재장소가 외곽에 떨어져 있으면 인적조차 드문 곳도 많다. 그녀는 게다가 당시엔 뚜벅이라 내가 차를 빌리게 되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없는 외곽 지역을 갈 수 있으니 좋아했다. 2인분 이상 시켜야 하는 맛집 취재도 함께 다닐 수 있어 비용도 절감하면서 취재는 더욱 다양하게 할 수 있으니 1석 몇 조의 효과가 생겼다. 


내가 경주에 집을 구한 이후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본인 자전거도 빌려주고 취재 뿐만 아니라 생활 정보도 알려줬다. 경주에 오가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게 되었다. 굳이 미리 약속을 하지 않더라도 취재를 다니다 보면 서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에게 경주 여행가이드북을 함께 쓰자고 제안도 했는데 책을 쓰기에는 부족하다며 사양했다. 


그녀는 경주가 고향이자 집이다. 태어나기는 다른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는데 초중고를 경주에서 나왔다고 했다. 부모님 고향도 경주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고는 다시 경주로 내려왔다고 했다. 잠시 쉬면서 다른 일을 준비 중이었는데 친구의 부탁으로 경주시 블로그 일을 하게 됐다고. 


그녀와의 시작은 그렇게 경주를 오가며 만나는 친구였다. 나이차이가 있으니 일상까지 세세하게 공유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행이나 음식 취향도 잘 맞는 편이었다. 친구처럼 만나던 그와 일을 본격적으로 함께 하게 된 것은 2016년부터였다. 

아마도 그녀는 나랑 만날 때 준비하던 일을 그 즈음 포기하면서 본인도 일을 확장하고 싶어 했고 나 또한 경주에서의 일에 대한 조직화를 고민하던 시기였던 거 같다. 당시 서울에서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경주의 일까지 맡기기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허락치 않았다. 


나의 제안으로 회사이름도 현재의 것으로 바꾸었다. 명함도 새로 찍고 적극 홍보했다. 본격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생겼다. 그 일이 잘 되면서 시너지가 효과를 봤는지 2017년부터는 큰 프로젝트도 맡았다. 

경북의 대표 관광도시인 경주와 안동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하는 법을 정리한 일러스트 지도를 한국어 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중국어간체, 번체 등 5개 국어로 제작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건데 이 프로젝트가 지역에서 우리 사업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한 듯하다. 그해 그 프로젝트 외에도 우리는 2가지 프로젝트를 함께 추가로 진행했다. 


2017년 이후엔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지역 콘텐츠도 함께 만들어보자는 얘기도 나누었다. 지역 잡지나 단행본을 내 보자고도 했고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에서 하는 공모사업에 지원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공동사업자로 이름을 올린 것은 2019년에 와서 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책임감 있게 일하고 싶어 제안을 했고 그도 동의했다. 


분명 동업을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런 저런 이견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겉으로 표현하던 하지 않던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를 했던 거 같다. 그녀는 나의 경력과 경험을 존중하고 나는 그의 태도와 열정을 존중했다. 이제는 그의 경력도 많이 쌓이고 원숙해졌다. 앞으로는 오히려 내가 그에게 기대야 할 것 같다. 지금도 두 사람의 속도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조직으로 잘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속도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지난 경험을 통해 배웠다. 특히 지방에서의 일은 더욱 그렇다. 누구 하나 몰아붙인다고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착착 진척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우리 둘의 관계를 묻는다. 나이 차이도 있고 고향이나 학교도 다른데 함께 일하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난 웃으며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했다. 거기에 더하면 ‘사회적 친구’이기도 하다. 얼핏 들으면 서로의 관계를 냉정하게 정리하는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난 이 관계가 마음에 든다. 파트너이니 파트너로서의 예의를 지켜야 오히려 일하는 데에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그녀와 함께 하는 회사의 존재는 더욱 소중해졌다. 코로나시국 첫 일 년은 어리둥절하면서 절망스러운 심정으로 보냈다. 두 번째 해부터는 할 수 있는 게 좀 더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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