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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시 감별사 Oct 29. 2022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해"

1-5 경주 아이와의 경주에서의 시간 

주말 아이가 집에 왔다. 10년 전 경주를 함께 돌아다녔던 그 꼬맹이는 올해(2022년)로 17살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숙사형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과 그 외 활동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못내 힘든지 유독 일요일이면 학교로 돌아가는 것을 싫어 계속 투덜거린다. 좀 더 정을 붙이면 나아질까 나와 남편은 학생이 학교 가기 싫은 건 당연하다며 그래도 기왕 가는 거니 가서는 즐겁게 지내자고 화이팅을 외친다. 


우리 부부는 딸의 고등학교 입학 후 매일 밤 전화기 앞에 모여 앉아 귀를 쫑긋 세우며 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감정을 읽으려, 이해하려 애쓴다. 특히 나보다 남편이랑 미주알 고주알 잘 떠드는 데 떠드는 목소리에는 투명하게 감정이 드러나 있다. 힘 빠진 목소리가 전해질 때면 혹시나 교우관계 등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닌 지 걱정되지만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다행스럽게도 2학기가 되자 학교에서 할 일이 많아지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상 기획, 촬영, 편집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방송부와 영화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얼마전 지자체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큰 상을 타기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한 걸음씩 잘 적응해 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경주에 월세방을 얻었을 때 아이는 7살 꼬마였다. 순전히 내 판단이었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한두달 지방에서 살아보는 거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았던 것도 당시 경주에 방을 얻었던 주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때가 유치원,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한달살기가 막 시작될 때였다. 대부분 여름이나 겨울 방학에 제주에 집이나 방을 얻어서 아이들과 함께 한달살기를 해보는 것이다. 


우리 어렸을 때는 친가나 외가가 농어촌에 있어서 할머니댁 하면 시골로 인식되곤 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시골이 따로 없으니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들에게 도시를 벗어난 다른 삶을 체험케 하는 게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생기고 있었다. 

 

6개월 계약이지만 월세방을 대여했으니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아이와 함께 경주에서 1주일 정도 머물며 도시에서는 알 수 없는 계절의 변화를 아이 스스로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싶었다. 실제 바쁘게 돌아다는 와중에도 아이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경주에서 나와 일주일을 머무르며 여기 저기 함께 다녔다. 


박물관도 여러 번 같이 가고 첨성대와 월성이 있는 동부사적지구에서는 자전거도 자주 탔다. 꽃이 피는 날에는 둘이서 하염없이 꽃이 핀 첨성대와 대릉원 일대를 돌아다녔다. 힘들면 칭얼 거리는 편인데 꽃이 핀 날은 뭐가 좋았는지 힘들다 소리도 별로 없이 신나게 돌아다녔다. 릉에서 아이는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었다. 


고분이 있는 공원에는 잔디가 깔려 있고 대부분은 잔디에 들어가도 된다. 아이와 경주를 돌아다닐 때면 간단한 간식과 함께 돗자리를 늘 챙겼는데 우리는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 타임을 종종 가졌다. 여유가 있을 때면 작은 종합장을 꺼내놓고 그림도 그렸다. 자동차가 있을 때면 동해안도 함께 갔다. 여름엔 아이 아빠도 와서 여름 피서를 경주에서 즐기기도 했다. 동해선 무궁화호를 타고 울산이나 부산 해운대도 함께 다녀왔다.

 

늘 아름다운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취재의 압박을 받을 때면 여유있는 시간보다는 쫓기듯 다닌 적도 많았다. 아이가 낯설은 장소에 적응할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움직였던 거 같다. 내가 일을 할 때면 아이가 장소에 익숙해질 만하면 시간없다고 빨리 이동을 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는 유독 힘들어했고 짜증을 부렸다. 어른과 아이의 시간은 따로 흐르는 데 이기적인 엄마는 그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수록 아이와 함께 다니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6개월 체류 이후에도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는 1-2년에 한번 정도는 경주에 함께 방문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5-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우리는 아이에게 수학여행 때 네가 가이드하면 되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 물론 초등학교 수학여행은 2014년 4월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으로 잠정적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요즘 아이는 아주 드물게 경주를 말한다. 아니 사실 내가 가끔 묻는다. 엄마랑 경주에 오갔던 때가 생각 안나냐고, 경주 안가보고 싶냐고.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아이의 대답은 늘 시큰둥하다. “글쎄...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해” 이게 다다. 그래도 뭐가 기억나냐고 물으면 늘 자전거타고 첨성대 주변을 달렸던 일이라고 답한다. 지금 집 주변은 자전거 탈 곳이 별로 없어서 그건 더욱 해보고 싶단다. 


드라마 매니아인 아이는 어디서 보았는지 시골집 경험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경주에서 시골집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많이 머물렀는데 기억 안나냐고 하니 그때는 아무 감정이 없었단다. 그래도 시골집을 가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경주에서의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늘 일한다는 핑게로 아이와의 시간을 소홀히 하곤 했다. 일과 육아는 함께 병행하기 힘들다. 나는 늘 힘들어하면서도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되뇌이며 일을 손에 놓지 않았다. 평소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거나 세심하게 놀아주는 몫은 아빠였고 난 건강과 식사, 약간의 학업 정도를 챙겼다. 당연히 아이는 늘 나보다는 아빠와의 시간을 좋아했다. 엄마보다는 늘 아빠를 먼저 찾았는데 난 그게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와의 시간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었던 것은 늘 ‘여행’이었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경주 이후에도 1년에 한 두 번 정도는 아이와 나 둘만 여행을 떠나는 시간을 가졌다. 짧게는 1박2일이었고 길게는 아이가 초 3학년 때 제주에서 3주간 머무른 적도 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본인이 기대야 할 곳을 본능적으로 파악하곤 했다. 나와 같이 있을 때는 잘 걷고 혼자서도 잘 하는데 아빠가 합류하면 늘 아빠에 매달리며 떼를 쓰거나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지곤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이탈리아-체코로 3주간 둘만이서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그 시간이 아이에게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 엄마만의 역할을 따로 인정해주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아빠만 먼저 찾던 아이는 유럽 여행 후 상황에 따라 엄마인 나를 찾았고 어떤 사안은 나와 얘기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했다. 


내게 작은 욕심이 있다면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살아갈 힘을 주었던 것처럼 앞으로 아이에게도 경주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완전히 잊혀지지 않고 작은 힘이 되어 주면 좋겠다.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엄마와의 순간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해주면 좋겠다. 인간은 때때로 일상이 아닌 특별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때 함께 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으로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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