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경주 릉이 있는 풍경
경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첨성대, 석굴암, 다보탑 등이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내게 경주는 '릉'의 고장이다. 집채보다도 큰 무덤들이 경주 시내 곳곳에 불쑥 불쑥 나타나는 것, 가장 경주다운 풍광이기도 하다. 경주에는 크고 작은 왕과 왕족, 귀족의 릉과 고분이 1천 여개가 있다.
경주의 가장 대표적인 릉이 있는 곳으로 대릉원을 꼽을 수 있다. 가장 크기가 큰 릉의 하나로 꼽히는 황남대총, 천마도가 발견된 천마총, 미추왕릉 등 총 20여개의 릉이 모여있는 곳이다. 경주에 가면 누구나 이곳을 들린다.
대릉원 말고는 여행자들은 무열왕릉과 김유신 장군 묘를 가장 많이 찾아간다. 특히 무열왕릉은 경주의 릉 가운데 무열왕릉임을 알게 해주는 귀부가 발견되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릉으로 꼽힌다.
경주에는 이름을 가진 38개의 릉이 있다. 고분은 이름대로 오래된 무덤이고 릉에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름이 붙은 릉만 38개이다. 둥근 봉분이 마치 제주의 오름같기도 하고 작은 뒷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고분 아래 서민들이 집을 짓고 살기도 했다.
올망졸망한 고분군이 경주의 현대 건물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내가 경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고분은 사계절 그 색이 달라서 고분만 보면 계절을 속일 수 없다고 한다. 최근 경주에 대한 사진 촬영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릉 촬영을 일정에 넣었는데 작가가 릉 구분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난 '물론'이라도 답했다. 릉 자체의 모양도 다르지만 릉은 릉이 놓인 주변 환경과 함께 보아야 한다.
다음은 경주를 10여년째 오가는 이가 주는 경주 '릉' 여행 팁이다.
봉황대와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 대릉원 맞은 편, 시내 쪽에 위치한 고분 공원이다. 금관총과 서봉총이 있는 곳이 노서동 고분군이고 가장 큰 릉으로 꼽히는 봉황대가 있는 곳이 노동동 고분군이다. 대릉원과 연결된 고분군인데 가운데 도로가 놓이는 바람에 분리됐다. 대릉원은 담으로 둘러싸여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야 하지만 이곳은 울타리가 없는 개방형이다. 잔디 관리도 잘 되어 있어 커피 한 잔 들고 피크닉 즐기기에도 좋다. 날씨가 좋을 때면 이곳에 많은 돗자리가 깔린다. 이른 아침엔 경주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체조를 한다. 반려견 입장도 가능해 강아지 산책과 놀이를 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경주 상가가 형성된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어 고분과 현대적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서면 여기가 바로 경주라는 안도감을 갖게 한다.
오릉 : 남산 가는 길목 5개의 봉분이 모여있는 공원이다. 릉이 크지는 않지만 공원부지가 꽤 크다. 박혁거세와 일영부인 등의 릉으로 추정되는 릉이 있다. 푸른 잔디가 눈을 시원하게 하는 곳이다. 봄, 가을 한가롭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봄 목련이 필 때가 가장 예쁘다. 오릉 돌담길은 숨은 벚꽃 명소이자 가을 단풍 명소이다. 대릉원, 첨성대 등에 사람이 붐빌 때면 난 조용히 이곳을 찾는다. 주변에 큰 브랜드 카페가 들어서면서 황리단길의 연장이 되어 이제 더이상이 이 동네도 조용하진 않겠지만 작은 가게들과 버스정류장, 돌담이 벚나무와 어우러지는 풍경이 좋다.
동부유적지구의 미류나무와 어우러지는 릉 : 첨성대 서쪽에 위치한 이름도 안알려진 고분이다. 무엇보다도 릉 옆에 늘씬한 미루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데 관리를 잘하는 지 나무 모양이 세모로 서 있어 이정표가 되는 곳이다. 이 나무와 어우러진 고분의 풍경이 멋지다. 언제 봐도 멋지지만 노을지는 일몰무렵이 너무 아름답다.
경주 남산 삼릉 : 경주 남산 삼릉골 입구, 배병우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더욱 유명해진 소나무 숲 속에 놓여있는 3개의 릉이다.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릉이 장관이다. 봄에는 이 소나무 사이에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할 때의 풍경도 일품이다. 소나무 숲 덕분에 가장 포토제닉한 릉으로 꼽히기도 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도입에 등장한 숲이기도 하다.
진평왕릉 : 보문 평야 한가운데 놓여있는 이 릉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교수가 그의 책 1권에서 가장 경주다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릉으로 꼽기도 했다. 가장 자연스럽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경주의 고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다. 오랜 활엽수림 몇 그루가 왕을 지키는 무사들처럼 릉을 감싸고 있는데 계절마다 다른 색, 다른 모양으로 감동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릉이다.
성덕왕릉 : 불국사 가는 길 중간 철길 너머 위치한 릉이어서 사실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신라 가장 치세를 누린 왕으로 꼽히는 데 성덕왕릉도 가장 형식적으로 완성된 신라 릉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릉 앞에 위치한 거대한 귀부 때문에라도 전공자들에게는 답사 1순위 릉으로 꼽힌다. 십이지를 비롯해 석인, 석수를 갖춘 한국 최초의 사례로 기록된다.
괘릉 : 주변에 놓여있는 각종 석조물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릉이다. 네 마리 돌사자가 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심지어 익살스러운 모습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석인들 중에는 서역인의 석인상도 보여 당시 신라가 서역까지 교류를 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실크로드의 종착점으로 신라를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덕여왕릉 : 경주 시내를 막 벗어난 낭산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소나무 숲과 어우러지는 릉이 풍경이 일품이다. 멀리 진평왕릉이 있는 보문 들판이 보이며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풍경이 멋지다. 릉 주변으로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다.
신문왕릉 : 불국사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사천왕사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 역사적 의미를 떠나 릉 앞에 꺽어진 소나무와 어우러진 릉의 모습이 일품이에요. 마치 충직한 무사를 앞에 둔 왕의 모습같아서 갖가지 상상력을 자극한다.
흥덕왕릉 : 이곳까지 찾아 간다면 역사 전공자일 확률이 높다. 경주 북쪽 양동마을에서도 다시 한참 북쪽으로 들어간 안강에 뚝 떨어져 외로이 있는 릉이다. 입구에서부터 릉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숲도 일품이다. 석인, 석수 등을 갖추고 있어 릉의 완성도도 높다. 무엇보다 이 릉 주변에서 흥덕이라고 쓰여진 파편이 발견되어 무열왕릉과 함께 릉의 주인을 스스로 밝힌 대표 릉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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