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센터에 있는데 갑자기 창밖이 캄캄해졌다. 이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비가 쏟아졌다.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후다닥 일어나 탈의실로 갔다. 그리고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빌려주는 우산을 받아 나왔다. 혼자 집에 있을 반려견 밀키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약국에 들러 공적 마스크를 사고 곧장 생협으로 향했다. 최대한 속도를 높여 달리다시피 해서 앞 사람들을 따라잡으며 갔다. 빗줄기는 강해지고 바람에 우산이 꺾일 기세였다.
생협에서 몇 가지 사서 나왔더니 물폭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뚫고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밀키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천둥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있어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왔다 갔다 하는데 혼자서 얼마나 떨고 있을지 생각하면 1초도 망설일 시간이 없다. 신호등 앞에서는 속이 바짝바짝 탔다. 신호가 바뀌는 것과 동시에 전력질주 했다. 계속되는 천둥소리에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속력을 가했다.
쓰레기를 뒤지려다 손잡이가 밀키 목에 걸렸다
도로는 잠깐 사이에도 장마 때처럼 비로 가득해졌다. 비는 사정없이 바지를 적시고, 신발 안으로도 들어왔다. 그러나 옷 젖는 게 대수랴. 신발 젖는 게 대수랴. 어서어서 나는 밀키 앞에 나타나 줘야 한다. 내가 보호자니까. 밀키야, 조금만 기다려, 엄마 금방 갈게. 학창 시절 100미터 달리기 할 때처럼 온 몸에 힘을 주고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오늘만이 여름인 듯 매섭게 울어대는 매미의 절박함으로.
숨은 턱까지 차고, 바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에서 현관문을 열고 중문을 열어도 밀키는 안 나왔다. 번호 키 터치하는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짖으면서 뛰어 나오던 아이가 아니던가. 몇 번을 부르고 나니 어디선가 나타났다. 나올 때 던져주었던 간식을 입에 물고서… 그 동안 사자를 막느라 얼마나 힘썼을까.(강아지들에게 천둥소리는 사자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간식을 입에 물고 무서움을 달래고 있었을까.
종종 내게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왜 강아지한테 얽매여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난 되묻고 싶다. 그럼, 언닌 왜 자식을 낳았수?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은 있지만, 무반려견이 상팔자라는 말은 아직 못 들어봤수! 그리고 밀키가 나보다 먼저 떠났을 경우 다시는 강아지를 들이지 않을 생각인데, 그 이유는 단 하나뿐, 이별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 하면서 '오후 세 시'의 시간이 내게 가장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부터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 나가고 있다. 새롭게 바뀐 내 일상이 나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