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오후 3시 45분 경. 마음먹은 대로 한 시간 정도 잤다. 아주 깊이, 아주 알뜰하게!
원래 야행성이기도 하거니와 코로나19로 집콕 생활하면서, 일어나는 시간이 9시에서 10시 사이였다. 그런데 3개월 간 몸에 쌓인 리듬을 깨고 오늘 6시 25분에 일어났다. 그랬더니 낮에 정신도 몽롱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고칠 때도 스르륵 잠이 왔다. 그래서 한 시간 푹 자고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일찍 일어난 것은 사흘 전부터이다. 코로나19로 띄엄띄엄 하던 알바도 못하고 몇 개월을 백수로 지낸 작은 딸이 드디어 병원으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병원 몇 군데 면접 보러 다니더니, 신통하게도 한 통증의학과의원의 코디네이터로 일하게 되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동료들이 도시락을 싸 와서 먹는다고!
이건 ‘아닌 밤중에 홍두깨’이며 날벼락이다. 학교 다닐 때도 급식을 먹어 집에 있는 동안 끼니만 챙겨주면 되었는데 말이다. 딸은 점심으로 먹을 것을 사서 가지고 갈 거라고 했지만, 내가 또 누구인가. ‘엄마가 아직 집에 있으니 싸 주마!’ 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말았다.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로 해결하는 것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첫날은 모르고 그냥 갔다. 두 번째 날엔 손은 많이 가도 반찬이 필요 없는 김밥을 싸서 들려 보냈다. 함께 먹으라고 하나를 더 싸 주었더니, 그 김밥을 들고 동료들 넷이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어제는 휴무라 쉬고, 오늘은 볶음밥을 싸 주었다.
도시락 싼다고 갑작스레 서너 시간 빨리 일어나니 정직하기 그지없는 내 몸이 적응을 못해 낮잠을 불렀다. 집콕 생활 4개월 만에 처음 잔 낮잠이다. 실컷 자고 일어나는 나날이었으니, 낮잠이 올 리 있었겠는가. ‘그래도 좋으니 딸아, 이번에는 열심히 다니렴.’
코로나 기간 중 작은 딸이 가장 잘 한 일이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딴 일이다. 인터넷 강의로 별 어려움 없이 따더니 병원에서 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달까지는 시급으로 일하고, 다음 달부터는 인턴으로 2개월을 거치면 정직원이 된다면서 무척 고무되어 있다.
딸은 그 동안 편의점, 카페, pc방, 식당, 공장 등 안 거친 알바가 없을 정도로 다 했다. 그것도 조금 하다 힘들다고 관두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깨알바라고 좋아하던 것도 한 달 하면 잘 했을 정도이다. 우리 가족 중 끈기 없는 사람도 작은 딸이고, 어디 잘 들어가고 잘 나오는 것도 작은 딸이다. 그러면서 먹고 입는 것에는 가장 많은 소비를 하고 있다. 딸이 그 동안 보인 행적을 보면서 어디 알바 간다면 가나보다, 그만 뒀다면 그런 가보다 했다.
그렇다면, 지금다니기 시작한 병원 일은 어떻게 되려나? 일도 재밌고, 동료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정직원이 될 수 있다고 기대를 많이 하고 있으니 성실하게 잘 다니기를 기대해본다.
딸은 나보다 더 늦은 12시가 넘은 시간에 일어났는데, 7시 조금 지나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적응 기간은 많이 피곤하고 졸리기도 할 것이다. 4일째인 오늘까지 아주 잘 일어나고 있다. 나는 도시락과 편지로 그런 딸을 한껏 응원하고 있다. 주부 9단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살림에 재주 없는 사람이 도시락 싸는 일은, 체력장 할 때 철봉에 매달리던 일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딸아, 엄마는 도시락을 쌀 테니, 니는 악착 같이 출근 하그라 잉!
(5월 22일)
덧) 지금 딸은 2주가 지나 인턴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집콕 생활 하면서 '오후 세 시'의 시간이 내게 가장 자유롭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부터 무엇을 했는지 기록해 나가고 있다. 새롭게 바뀐 내 일상이 나의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