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8시 16분 27초에 꼭 TV를 보렴

딸 초등 6년~중1 때 함께 쓴 교환일기(2008~2010년)

by 김건숙

사진 속 모습이 아름다워 붙여보았어. 화전을 부치고 있구나. 예전에 《신토불이 우리 음식》에서 배운 것 기억나지?

아낙네들이 나들이 가서 그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이야기들을 화전 부치면서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는 것 말이야. 예전 새댁들은 시집살이라는 게 있어서 시어머니께 구박을 많이 받고 살았어. 살림살이도 넉넉지 않았고 말이야. 그래서 화창한 봄날에 동네 여인들과 나들이 가서 가슴속 한을 풀고 들어와 다시 생활을 이어갔을 것 같구나. 엄마도 오늘은 왠지 기분이 안 좋은데 이 사진을 보고 훨훨 날려 보내고 싶구나. 어제 소리 강습소에서 배운 ‘함양 양잠가’라는 노래를 꽤 많이 불렀더니 기분이 풀리긴 했지만 말이야.

이 그림 속에서 제비소리가 들리는 듯하구나. 오늘은 음력으로 3월 3일, 삼짇날이라고 하는데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이야. 작년 강진에 있는 ‘백련사’에서 제비 본 것 기억나니? 엄마 어렸을 땐 봄이면 처마 밑에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단다. 어미가 벌레를 잡아다 새끼들에게 먹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오늘 밤 8시 16분 27초에 우리나라의 첫 탑승우주인이 된 이소연 언니가 우주를 향해 날아간다니 이따 꼭 TV를 보거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에서 발사된대.

이소연 언니는 3만 6천 명이 넘는 지원자들을 제치고 뽑혔어. 그리고 낯선 러시아에서 1년 이상 고된 훈련을 마친 과학 박사야.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이지. 여성 우주인으로는 49번째이고 아시아에서는 2번째래. 참 영광스러운 일이야. 엄마도 수업 마치고 빨리 갈 테니 같이 보자.

컴퓨터는 내일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장화홍련전》 이번 주에 수업할 거야.

어떤 사람은 똑같은 비디오를 100번 보고 나서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자기 아들에게 ‘마틸다’를 보게 하더구나. 우리 유민이도 ‘마틸다’ 많이 보는데, 그렇지? 오늘 시간 내 DVD 보면서 자꾸 따라 하도록 해 보렴. 열심히 노력하면 못 이룰 게 없다는 것을 우리 유민이도 잘 알지?

오늘도 열심히 살자꾸나.


유민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하는 엄마께

엄마, 편지 잘 받았어요. 아주 빽빽하게 쓰셨네요.

편지 보니까 저도 엄마랑 소풍 가 화전 먹으면서 서운했던 얘기, 즐거웠던 얘기 모두 훌훌 털어놓고 싶네요. 엄마는 저 키우느라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겠다. 죄송해요.

오늘 8시 16분 27초에 하늘 봐야겠다. 안 보이려나? 엄마 이따 수업 다녀오신 다음에 TV에 나오는 이소연 같이 봐요. 재밌겠다. 벌써부터 긴장되네요.

8시 16분 27초가 되려면 4시간 11분 27초 남았네요. 엄마 항상 수업 다녀도 이런 것도 알고, 만약 수업 안 다니시면 아주 박사겠네요.

오늘 바쁘신 와중에도 떡볶이 해줘서 감사했어요. 맛있었어요.

이제 곧, 곧 공부방 가야겠네요. 마미 알러뷰~ 건강하세요.

엄마를 끔찍이 사랑하는 유민 올림



이전 14화햄버거 하나 먹을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