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딸 초등 6년~중1 때 함께 쓴 교환일기(2008~2010년)

by 김건숙

♥하는 유민아


책상 위에 놓인 박스를 열어보았더니 어제 산 운동화가 얌전히 들어있더구나. 그걸 보며 살포시 미소 지었어. 엄마라면 참지 못하고 바로 신고 갔을 거야. 유민이는 어제 비가 와서 버릴까 봐 안 신고 갔잖아. 유민이 참을성이 엄마보다 세 배는 많은 것 같구나. 물건 아끼는 것처럼 맛있는 것도 잘 참아내지. 그건 엄마가 우리 유민이한테 배워야 될 것 같아. 엄마는 먹을 때도 맛있는 걸 먼저 먹잖아. 한 수 위인 유민이 모습 잘 관찰하고 배우도록 할게.

아침에 유민이 밥 먹을 때 엄마가 ‘모닝 페이지’ 썼잖아. 처음에 이렇게 썼지.


흐리다. 하늘이 뿌옇다. 어제 비가 왔으니 맑은 햇살이 비치면 좋으련만…….

그런데 쓰기를 마칠 무렵 하늘을 보니 정말로 구름이 걷히면서 군데군데 푸른 빛깔이 보였어. 그리고 맑아지면서 동쪽에서 햇살이 비치고 있었지.

우리 삶도 그렇다고 생각해. 늘 기쁜 것만도, 그렇다고 늘 우울한 것만도 아니지. 동전의 양면처럼 왔다 갔다 해. 그리고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늘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지. 그래서 우울하거나 나쁜 일이 있을 땐 마음속으로 지나가기를 빌어보는 거야. 엄마가 시 하나 들려줄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랜터 윌슨 스미스)

어느 날 페르시아 왕이 신하들에게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밤새 모여 앉아 토론한 끝에

마침내 반지 하나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반지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크게 웃음 터뜨리며 만족해했다.

반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다만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기쁨과 환희로 가득할 때

근심 없는 날들이 스쳐 갈 때면

세속적인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이 진실을 조용히 가슴에 새기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해리포터’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홍길동’ 같은 데서 나오는 마법이나 도술이 꼭 이야기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가 진실로 믿고 간절히 원하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일은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단다.

우리가 절망적이거나 우울할 때는 이 시를 떠올려 보자꾸나. 그리고 마음속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떠올리며 기다리는 거야. 그런 순간들을 자꾸 불러오면 그 우울과 절망감도 달아날 거야.

유민아, 이 시를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보렴. 그리고 어땠는지 답장에 적어줄래? 뭐라 적을까 궁금해. 유민이도 좋은 시나 좋은 문장, 엄마에게 소개해 주렴.

유민아, 사랑해!

아침의 너의 모습, 정말 사랑스러웠어.





© Clker-Free-Vector-Images, 출처 Pixabay





♥하는 마미께

엄마, 이제 우리 분홍 색깔(노트 구분 색)로 넘어왔어요. 언니는 세어보니까 한참 남았는데…….

엄마께서 좋은 시 써주셨잖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시는 합리적이고 에포크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마음이 슬플 때는 기쁘게’는 마음에 드는데요, 마음이 기쁠 때 슬퍼지면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니까 ‘마음이 기쁠 때 슬퍼지는’이란 말은 빼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합리적인 생각으로 깨달음을 주는 거니까, 저 이제 이해됐어요. 읽기 전에는 마법을 부려서 그렇게 기분을 바꾸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 깨달았어요. 잘했지요?

그런데 시가 약간 피천득 씨가 쓴 ‘이 순간’이랑 조금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매일 화장실에 갔을 때 보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시예요. 엄마는요? 저도 엄마가 모르는 시 이쪽에다 써야겠다.

그런데요, 언니 교환일기가 어떤 거는 별로 쓰지 않아서 몇 줄 안 되던데요.(몰래 보려고 한 건 아니고 분홍색 몇 장 남았나 보려고)

엄마, 오늘 가방 샀다면서요? 축하 축하. 정말로 축하아요. 엄마 가방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이제 마칠게요. 처음으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온 것 같아요.

사랑해요.


엄마를 끔~찍이 사랑해서 탈인 유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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