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유를 구속하는가?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큐레이션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역사상 가장 강렬한 소설 도입부의 첫 문장,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문장이 충격적인 이유는

주인공 뫼르소가 자기 엄마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냉담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이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툭 내뱉는 이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근본적인

인간성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뫼르소는 우발적으로

아무 이유나 원한 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단지 햇빛이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고는

뫼르소는 그 어떠한 죄책감이나 행동의 제약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전반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는 사랑을 모른다.


그는 살아서도, 아니 죽어서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듯이

애인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친구도

더 나아가서는 자신도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관심조차 없다.


뫼르소에게 모든 사람은 사물과 다름없다.


단 한 사람과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뫼르소에게 살인은 사소한 일이다.


어떤 얽매임도 없는 그는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았다.





우리가 자유에 제약을 받으며 사는 이유는

내가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으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깊게 상처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행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뫼르소는 어떤 관계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없이 자유로운 상태다.


사람을 향해 방아 쇠을 당기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

뫼르소는 주저 없이 그 충동을 실현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모두 자유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스스로를 묶고 자유를 제한한다.


스스로의 의지를 넘어서 생겨난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한다.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걸까?


아니. 그렇지 않다.


제약은 자유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다.


모든 인간은 관계적 존재로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따라서 나는 나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스스로의 행동에 제약을 둬야 한다.


아무런 통제 없이 우리의 원초적 욕망에 따라

모든 자유를 실현하며 살아간다면,

주변 사람들을 포함하여 스스로도 큰 불행에 빠지고 만다.


우리가 만약 뫼르소라면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얼마나 먹든,

술 담배를 많이 하여 당장 내일이라도 뒤져버리든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뫼르소가 아니다.

세상의 권력을 다 쥐어도, 억만금을 얻어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저라면 자유 안에서 홀가분함을 느끼며 가볍게 살기보단,

기꺼이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편을 택하겠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내가 가진 자유의 일부를 포기할 준비가 되었을 때,

인간은 사랑으로 인한 더 깊은 자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랑은 곧 책임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책임을 통해 인간이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


관계를 통해 욕망하는 상대를 나의 책임 안으로 들여올 때,

인간은 자기 안의 가장 깊은 의지를 실현하게 된다.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면,

사랑을 이룬 사람은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실현한 셈이다.


단지 욕망을 충족하는 사랑에만 머무른 사람은

설렘의 ‘쾌적한’ 관계가 끝나고

서로에 대한 책임을 지며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는 순간의 변화를 견딜 수 없어한다.


자신의 욕구만 일방적으로 충족하는 사랑은

갓 태어난 아기와 다를 바 없다.


어머니의 젖만 탐하면서,

시간이 지나 성장해

이제는 곧 자신이 어머니를 챙겨드릴 필요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자기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자유,

그 자유만 추구하면서 거기에 머무는 사람은

성숙한 사랑을 아직 배우지 못한 갓난아기와 같다.


그런 사람은 설렘이 끝난 순간에,

스스로의 자유가 구속된다 여기고

또 이별의 때가 왔음을 직감하여

비슷한 패턴의 연애만 반복하고

한 사람과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본질적으로 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더 깊은 인간 이해와 성숙,

그리고 스스로의 힘과 능력을 체험할 기회를 영영 잃는 것이다.

그가 욕망의 자유를 놓지 못하고 책임을 저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깊은 사랑 속에서 자유의 성숙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현실에서의 자유는 언제나 제한된 형태로만 나타난다.

자유는 항상 나와 타인의 의지를 절충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타인과의 공존이라는 상위 가치 아래에 둘 수 있는 사람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분명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의 일부를 포기하는 결정을 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타인과 함께 행복해지겠다는

더욱 큰 의지를 실현한 것이다.


우리는 일생에 걸쳐 이런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동생이나 친구를 위해 아끼는 장난감을 양보하거나,

연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려 먼 길을 돌아가거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직장에 나가고 싶지 않은 날이 훨씬 많지만 열심히 일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내가 지닌 자유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사랑은 어떤 강압 없이도 희생과 봉사를 가능하게 하니까.

사랑 안에서 인간은 이기심의 욕망을 넘어 이타심으로서의 자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타인을 위해 자기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개인의 자유’를 너무 이상화한 나머지

나의 의지를 일부 포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더욱 성숙한 자유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명심하세요.

현실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의 자유다.

이기심에 눈먼 사람에게는

이 관계성이 그저 한계나 구속, 제약일 뿐이다.

무책임한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에 따르는 관계의 의무란

답답한 것일 뿐이다.


반면 누군가를 책임 있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관계성과 의무의 위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의 행복에 대한 책임감이

자기 행복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와 상대의 의지는 대립이 아닌,

서로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프랑수아즈 사강은

평생을 난잡한 연애와 알코올, 스포츠카 과속 와 약물, 도박 등

그야말로 도파민에 젖어있는, 젖다 못해 찌들어있는 생활을 하며 살았다.

우리는 그녀가 외친 자유가 진정으로 성숙한 자유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어떤 이에게도 관계적 책임과 희생을 요구받지 못한 이들의 삶은

결국 비참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개인인 동시에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즉,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무감을 지고 행동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숙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게 될

오해와 오만과 무수한 시행착오와 상실과 고통,

그리고 그 속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손과 깊은 눈동자 속 작은 행복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큰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단 하나의 책임만 아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_알베르 카뮈


“더 넓은 희생의 의미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심리학적으로 희생이란 더 큰 의식으로 발전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현재의 의식을 포기하는 것이다.”

_고혜경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Refer.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 이충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