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바람기가 문제인 “진짜“ 이유

제임스 홀리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큐레이션




기혼자 중 절반 이상이 혼외관계 문제를 겪었다고 보고 했으며, 이중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약간 높았다.


그들 중 누구도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나는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거야. 배우자와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그 대상은, 분명 투사된 이미지를 지닌 사람이다.


결혼이 내면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배우자가 완벽한 솔메이트가 아니라 나와 다른 평범한 사람임을 알게 되면 새로운 아니마/아니무스 투사는 바람피우는 행위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미국에서 한 유명 여배우가 여덟 번짼가 아홉 번째 결혼을 발표했다. 행운을 빌지만, 이 배우는 늦은 나이에도 여전히 투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48세 기혼 남성은 21세 여성과 한창 사랑에 빠져있다. 나는 그가 사귀는 여성을 만나본 적도 없고, 그의 부인이 얼마나 짜증스러운 사람인지 당연히 모른다. 바람을 피우며 그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새로워지는 느낌일지도 물론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무의식의 힘은 논리나 전통, 헌법보다도 자기를 더 존중해 주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이를 직접 인정하되, 그 원인이 바람피우기로 나타난 투사 때문이었을 가능성을 회피하거나 외면하지는 말자. 만약 내담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면 나는 상담기간을 더 늘려 자신의 결혼생활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소용이 없다. 무의식에 사로잡힌 개인은 현실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젊고 예쁜 여자와 바람이 나는 남편만큼 나이 먹은 남성과 바람피우는 아내도 많이 봤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아니마를 부적적하게 형성한 남성은 그와 비슷한 수준의 여성에게 끌리고, 마찬가지로 아니무스를 부적절하게 형성한 여성은 세속적 힘을 가진 나이 많은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남성이 젊은 여성을 원하는 것은 자신의 미성숙한 아니마를 반영하며, 여성이 지위나 나이가 있는 남성에게 끌리는 것은 자신의 불충분한 아니무스 발달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관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 보이겠는가. 자신에게 한때 충만했으나 잃어버린 영혼을 보듬어주니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잔다고 엿 같은 일상이 메워지진 않는다.”




어떤 관계든 사실 지속하는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무의식의 힘, 각종 투사, 콤플렉스 등이 얼마나 강력한지 생각하면, 어느 누가 어떻게 타인과 순수하게 연결될 수 있겠는가? 애정관계는 언제나 거대한 혼돈과 상처의 아수라장이었다. 인간은 다른 반쪽을 찾는 절반이 아니라 여러 가지 면을 찾는 다면체로 생각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아무리 완벽한 상대를 찾아도 이 세계에서는 다면체의 모든 면을 한 번에 볼 수 없다. 기껏해야 몇 개만 볼 수 있다.




성적으로 개방된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를 옹호하는 주장이 아무리 논리적이라 해도 감정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결혼 계약이 성립하더라도 질투, 갈망,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는 욕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인간 다면체의 여러 면 중 한 사람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일부일 뿐이다. 여러 명과 우정을 맺는 일은 가능하지만, 이 역시 성적 영역을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하다.




성격의 다면성을 인정하는 능력은 배우자에게는 위협이나 개인에게는 해방이다. 내면아이가 지닌 욕구를 생각해 보면 해결책이 외부에 있는 건 당연하다. ’ 저기 어딘가에 나를 치유하고 회복시켜 줄 누군가 있을 거야 ‘









중년의 바람기가 의미하는 것은 삶을 되짚어가서 발달 과정에서 놓고 온 무언가를 다시 붙잡아야 한다는 명령이다. 발달 과정에서 놓친 것들은 의식 저 아래에서 마음을 뒤흔들기 때문에 아직 찾아낼 수 없다. 무의식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은 자신의 미발달 영역과 딱 들어맞는 타인에게 투사된다. 자신의 심리 안에서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는 한, 바람기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이 모두를 통틀어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이 애정관계의 맥락에서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확인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독립적인 사람이라도 애착을 지속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결혼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욕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고 끊임없이 기대하는 만큼, 결혼생활에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에서 비롯된 후회와 분노는 개인의 심리의 큰 짐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게 남을 탓하는 일이다. 결혼생활에서의 대화가 억압과 실망의 반복으로 뒤덮여버린 이유는 배우자의 평범한 모습에서 신비한 타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바람의 상대는 신비한 타자로, 의심의 여지없이 매력적이며 자신의 다면체적 자기에서 덜 발달된 부분이 투사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신비로운 만남 vs 결혼생활에서 결혼생활이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따라서 바람피우던 사람이 바람을 스스로 끝내고 자신이 잃어버린 부분을 되찾는 것과 결혼생활 안에서 시도해보지 않은 대화를 되살려 원래의 동반자로 돌아오는 데는 대단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니체는 결혼을 거대한 대화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실제 결혼은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모습으로 사는 게 어떤지, 그리고 그 삶이 타인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진실로 공유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며 아이를 낳아 가족을 만들 수는 있어도, 배우자의 신비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슬픈 것이다.




결혼생활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우선 더 큰 이별을 겪어야 한다. 결혼관계를 전환시키려면 우선 각자가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되어야 한다. 결혼생활을 변화시키려면 다음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1. 부부는 자신의 심리적 행복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2. 부부는 각자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하며,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기대를 이유로 상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타자로서 적극적인 자세로 서로의 경험에 귀 기울여야 한다.


3. 이러한 대화를 적극적,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큰 노력을 요하는 이 세 단계를 실행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은 종국에 파탄 나고 만다. 서로에 대한 헌신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이런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결혼식을 치르든 치르지 않든 급진적 대화 없이 진정한 결혼을 이루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온전히 공유하는 대화를 통해서만 친밀한 애정관계를 이룰 수 있다.


나와 다른 배우자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초월하는 일이다. 자신을 제삼자의 위치에 놓고 애정관계의 수수께끼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단순히 ’ 당신과 나‘가 아닌, ’두 사람 이상의 무엇을 낳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