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마루야마 겐지)
https://www.youtube.com/watch?v=8KQag7OvTL8 (김수철 - 정신 차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독자를 매섭게 쏘아붙이는 독한 에세이다. 힐링 에세이가 난무하는 요즘 서점가에서 보기 드문 쓴소리로 가득하다. 부모에게 얽매여서 자기를 잃어버리지 말고, 회사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느라 삶을 낭비하지 말고, 생각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지 말고, 잇속만 차리는 정치인들과 국가라는 허상을 신뢰하지 말고, 허황된 신앙에 빠지지도 말고, 그깟 연애 따위에 목을 매지도 마라. 겐지는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삶의 목적을 찾아 전력으로 매진하는 삶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그 밖의 것은 모두 삶의 부스러기일 뿐이니 똑바로 살라고 말한다.
과격한 주장에 놀라 책을 멀리 치우기 전에, 작가가 왜 그렇게까지 강경한 어조로 일관하는지에 대하여 골몰해 보아야 한다. 마루야마 겐지의 꼬장꼬장한 태도와 공격적인 훈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불편해하고 그와 맞짱을 뜨려고만 해서는 곤란하다.
겐지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비껴가는 꺼림칙하리만치 도발적인 주장을 마구 쏟아내면서도, 설명은 구차하다는 듯이 근거조차 대려 들지 않는다. 그는 학술적 연구에 관심이 없다. 아첨하는 태도로 손을 비비적대며 들어주십사, 하고 독자를 설득할 생각도 없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죽지 못해 사는 현대인의 뺨따귀를 후려치고, 물세례를 퍼붓고, 몽롱한 정신과 힘이 풀린 사지를 일으켜 세우려 하며 작가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여길 뿐이다. 나이답지 않게 활력을 잃고 자기 세계에 갇히거나 허무한 쾌락만을 좇는, 손주뻘 젊은이들의 깊은 잠을 깨우려면 삿된 논변이나 친절한 설명 따위가 아니라 귀를 비틀어 잡고 벽력같은 대성일갈을 퍼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겐지의 꼿꼿한 태도는 불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믿음직스럽다.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고 아연실색하거나 꼰대 같은 설교는 사양이라며 귀를 틀어막기는 쉽다. 감정과 직관에만 휘둘리지 말라는 겐지에게 고분고분히 지고 싶다면 말이다. 말본새만 거칠 뿐 뻔한 내용이라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다. 겐지가 말하는 생각하는 자신의 삶을 이미 살고 있다면 늙은이의 잔소리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못내 버겁게만 느껴진다면, 속는 셈 치고 고집 센 노작가의 호통에 귀를 한번 열어 보자.
그렇다고 해서 부모를 버려야 하고 직장인은 노예며 애절한 사랑 따위는 같잖다는 독설을 책상머리에 받아 적고 냉큼 삶의 신조로 삼거나 그리 살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을 한심하게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까칠한 노인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자기의 생애와 상황에 맞춰 적당히 거르고 적당히 취하는 지혜로운 독자가 되도록 하자. 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는 것이 정견에 이르는 길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겐지 또한 자신의 충고가 독자를 구속하는 도그마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마는, 사람의 똑똑함은 지능지수가 아니라 태도와 의지에서 결정된다는 겐지의 가르침만 잊지 않는다면 지혜로운 독자가 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고 나면 겐지의 날 선 고언 중 적어도 몇 줄 정도는,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아마도 이것이 겐지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일 테다.
베버의 가치 합리성/목적 합리성 같은 개념을 빌려 추상적인 논의를 할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쓸데없는 짓이 될 듯하여 관둔다. 대신 저자가 아쿠타카와상 최연소 수상자이기도 하니만큼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한 문장으로 갈음하자.
인생이란 한 통의 성냥갑과 같아서, 너무 무겁게 다루면 우스꽝스럽고 너무 가볍게 다루면 위험해진다.
겐지의 요구 사항은 보통 결의와 다짐으로는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그처럼 무거운 짐을 독자의 어깨에 싣는 그는 류노스케의 말을 이해 못 할 만큼 헛늙지는 않은 것 같다. 가벼이 들을 수 없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다가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라고 후련히 외치는 겐지가 아닌가. 니힐리즘과 나르시시즘에 매몰되면 안 되지만 성냥갑을 너무 무겁게 대하는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도 되도록 피하자. 겐지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제자의 삶을 짓누르는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와는 다른 어른이다(꼬장꼬장한 대머리라는 점은 닮았지만). 짐짓 성을 부리는 그의 태도는 본디 인생이란 것이 가장 쓴 쓴소리보다도 훨씬 씁쓸하고 고독한 것임을 알기를 바라는 노파심의 발로가 아닐까. 겐지의 꾸짖음은 참 엿 같기도 하고 뭣 같기도 한 인생과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한 따끔한 불주사다. 바늘이 무섭다고 피할 게 아니라면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당당히 팔뚝을 대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진부한 문장을 속는 셈 치고 다시 한번 믿어 보자. 그리고 나를 희생시키려는 삶에 중지를 치켜들고 말하자.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