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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nui Jun 11. 2022

같은 감독, 다른 영화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2022)





〈걸어도 걸어도〉(2008)의 한 장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걸어도 걸어도〉에는 고요함과 잔잔함 가운데서도 보는 이를 선뜩하게 만드는 예리한 순간들이 있다. 한 인간의 내면, 또는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의 틈을 파고드는 순간이라고 할까.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다.



 (※스포주의) https://youtu.be/qhh2-Fu6qzE

(앞뒤가 끊긴 유튜브 영상보다는 영화로 직접 보기를 추천한다.)

큰아들의 기일을 맞아 일가족이 모인 집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청년이 찾아온다. 가족들은 청년에게 상냥하게 굴지만 청년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오래전 청년이 물에 빠졌을 때, 이 집의 큰아들이 청년을 구하고 대신 죽었기 때문이다. 청년이 가고 난 뒤에 작은아들이 어머니에게 운을 띄운다. 이제 그만 오게 해도 되지 않느냐고. 어머니는 말한다. 일 년에 한 번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받지는 않을 거야. 






해당 장면은 보는 이에게 큰 인상을 주는데, 이는 단지 이야기의 내용이 사람의 폐부를 찌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명배우인 아베 히로시(작은아들 료타 役)와 키키 키린(어머니 役)의 연기와 호흡은 물론 훌륭하지만, 각본과 편집, 연출을 모두 겸한 감독 고레에다의 역량을 우선 상찬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배우의 호연 또한 연출의 일환으로 파악할 때 더 제대로 볼 수 있다. 위 영상 직전의 대화부터 해당 장면을 복기해 보자.


본론에 들어가기 전(미디엄 롱 쇼트)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서 뜨개질에 집중하고 있고, 아들 료타는 어머니의 뒤에서 서성거린다. 모자는 여느 늙은 어머니와 오랜만에 본가를 찾은 장성한 아들이 나눌 법한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최근에 위성방송을 달아서 야간 야구경기를 볼 수 있다느니, 일전에 얘기했던 스모선수의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느니 하는 신변잡기적인 얘기들. 극 전체와는 무관하지만 무던한 모자관계를 환기하며 이후에 나올 본론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필요한 부분들이다. 카메라는 미디엄 쇼트로 이들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전달한다.


아들 료타가 본론을 꺼낼 때, 어머니의 모습(버스트 숏)

이윽고 아들 료타는 어머니에게 본론을 꺼낸다. 이때 카메라는 말을 하는 료타가 아닌,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뜨개질에 집중하는 어머니의 무덤덤한 모습을 찍는다. 직전 쇼트보다 더 가깝지만 지나치게 가깝지는 않은 거리에서, 정면도 측면도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료타가 운을 띄우자 어머니는 아들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눈썹을 올린 채로 아들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청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어머니는 고개를 바로하고 눈썹을 내리깐다. 눈과 손으로는 여전히 뜨개질에 집중하면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새침한 말투로 반문한다.


아들 료타의 버스트 숏(左)과 클로즈업에 가까운 어머니 토시코의 측면 숏(右)

말을 꺼낸 목적을 이야기하는 료타를 잠깐 비춘 뒤에 다시 어머니 토시코에게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아예 측면 쇼트로 그녀의 옆 얼굴에 한층 더 근접한다. 배경은 초점이 흐려져 있고, 어머니의 옆 얼굴엔 그늘이 져 있다.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쉴새없이 뜨개질을 하지만, 눈은 때때로 화면 바깥, 아니 화면 바깥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큰아들의 흔적을 좇는다. 1분 가까이 할당된 쇼트의 길이는 관객이 숨을 죽이고 오래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그림자를 관조하게 한다.


듣는 료타와 말하는 어머니(左), 울컥하는 료타(中), 뼈가 담긴 말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右)

같은 장면에서 이어지는 대사 또한 부모 자식 간의 어긋남을 서늘하게 포착하는데, 〈걸어도 걸어도〉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끊는 편이 낫겠다. 아직 안 보신 분들께서는 모쪼록 직접 보시기를.






어제 극장에서 고레에다의 영화를 두 번째로 봤다. 워낙에 유명한 한국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다 보니 안 볼 수가 없었다.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작품이기도 하고.


그런데 처음 봤었던 〈걸어도 걸어도〉와의 갭이 너무 커서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브로커〉는 칸영화제가 아니라 청룡영화제가 더 어울리는 영화다.(최고상을 수상할 만한 영화도 아니라고 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국내에도 팬이 꽤 많은 감독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거의 대부분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별로인 작품으로 〈브로커〉를 꼽는 듯했다. 그만큼 〈브로커〉와 〈걸어도 걸어도〉는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간극이 큰 영화들이다.


물론 어떤 예술가의 예술적 감각이 커리어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락가락하는 사람도 있고, 젊은 시절에 좋은 작품들을 선보이다가 말년에는 매너리즘에 빠져서 참신함을 잃고 마는 경우도 많다. 다만 〈브로커〉를 두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각이 무뎌졌다고 단언하는 것은 성급할 것이다. 그보다도, 〈브로커〉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가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이웃 나라 사람임에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걸작을 남긴 나보코프 같은 인간이 갑자기 무서워진다...)


〈브로커〉의 옹색함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 굳이 각본의 완성도를 분석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솔직히 각본도 되게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걸어도 걸어도〉에서 보았던 감독 특유의 리듬과 견주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자로 잰 듯한 편집의 타이밍과 물 흐르듯 이어지는 대사 구성은 물론이고, 영화 전체를 관조하던 세밀함과 차분함을 〈브로커〉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편집의 타이밍은 조급하고, 대사는 유치하며, 인물들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 보인다. 드라마 장르의 영화에서 대사와 연기의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특정 배우의 연기가 특별히 별로였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위화감이 든다는 느낌이다. 배우들의 역량 탓이라기보다도 연기 디렉팅과 연출이 전반적으로 미진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배우들이 잘했고 못했고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하게도, 보는 이의 흉금에 얹히는 묵직한 덩어리가 이 영화에는 없다. 영화 전체의 만듦새가 어설프다 보니 다소간의 유치함을 무릅썼음이 분명한 "태어나줘서 고마워" 씬도 여느 한국영화의 신파를 볼 때처럼 민망하기만 하다. 케이블카에서 강동원이 이지은의 눈을 가려주는 장면도, 그것만으로는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체 극의 정서에 몰입되지 않다 보니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한국어의 어감과 어조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핸디캡이었을 터. 쇼트를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대사가 자연스러운지, 관객에게 전달은 잘 되는지, 누가 더 매섭게 조언했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감독과 국내 최고의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말과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만 새삼스레 곱씹으려니 참 아쉽기만 하다.



〈밀양〉의 종찬

그러나, 그 와중에도 송강호의 연기는 단연 군계일학이다. 송강호는 확실히 색이 강한 배우이기는 하다. 멀게는 게리 올드만, 가깝게는 이병헌과 같은 배우들에 비하면 말이다. 억양과 외모가 하도 강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송강호의 연기를 절하할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한때는 연기 스펙트럼이 좁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특유의 능청스러움조차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아니다. 송강호의 훌륭함은 미묘한 균열의 전조, 극의 흐름이 전환되는 순간을 온몸과 얼굴에 담아낼 줄 안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브로커〉는 고레에다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매우 시끌벅적하고 과장된 호흡의 영화이지만, 정작 이 영화를 견인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송강호의 스크린 장악력이다.


굳이 덧붙일 내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유의 연기에 대해서는 내친김에 짤막하게라도 언급하려 한다. 나는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정말로 좋아한다. 드라마를 그렇게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아무튼 한국드라마스러우면서도 한국드라마 같지 않은 명작임에는 분명하다. 고레에다가 아이유를 캐스팅한 까닭도 그 드라마가 한몫했다고 한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 역을 맡은 아이유의 연기는 이견의 여지없이 훌륭했다고 본다. 굉장히 어두운 캐릭터였는데, 아이유는 음침하고 대사가 많이 없고 대사가 길지 않은 연기는 상당히 잘 소화한다. 하나, 자기가 표현할 줄 아는 범위를 넘어서면 급격히 어색해지는 게 문제다. 〈브로커〉의 '문소영'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괜찮을 때는 괜찮지만 어색할 때는 어색하다. 사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배우의 연기력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봐서, 차기작을 지켜봐야겠지만, 배우로서는 그다지 기대되지는 않는다... (중학교 다닐 때 러브유 회원이었다. 아이유 굉장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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