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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nui Sep 10. 2022

인프피의 사회적 성공욕구에 관한  실패한 시론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남자친구 얘기를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친구는 지금 남자친구와 결혼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듣기로 친구의 남자친구는 착하고 순한 사람 같았는데, 친구는 그런 점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친구는 야망이 넘치는 편이다.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다가 활동적인 취미를 즐기고 사교생활에도 열심인 친구다.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행동력이 좋은 편이다. 반면 친구의 남자친구는 생활력이 강하지 않은 듯했다. 물욕도 적고 야심도 없어서 답답해 죽겠단다. 돈이 없으면 버는 게 아니라 없는 대로 안 쓰는 스타일이야. 어, 뭔지 알겠다. 나도 그러거든... 그니까. 오빠도 인프피잖아.


그렇다. 친구 남자친구의 MBTI는 인프피다. 나도 인프피다.


당시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같은 인프피라도 나는 야심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역시 MBTI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MBTI는 사람을 오해하고 착각하게 만든다. (???: 인프피를 씹프피라고 해요)[1] 그런데 나는 살면서 믿을 만한 것을 별로 본 적이 없고 실제로도 뭔가를 별로 믿지 않는 편이기에 믿음이라는 것은 유동적이고 애초에 기만적이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반적으로 믿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보단 믿을 만하지 않다고 사람들이 의심스러워하는 것―귀신이나 초자연현상이나 픽션 같은 것―을 믿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MBTI도 좋아한다는 뜻이다.


처음 MBTI를 검사했을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는 MBTI가 유행하기 한참 전이었는데, 무슨 교육 시간에 강사가 약식 심리검사로 MBTI를 진행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ISTP 같은 유형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뒤로는 한 번도 S나 T가 나온 적이 없다. MBTI가 막 인터넷상에서 유행하기 시작할 즈음에 다시 검사를 했었는데 그때 INFP가 나왔고, 이후로도 두어 번 정도 더 해봤지만 계속 INFP가 나왔다. 그래프가 아예 한쪽으로 기울어 있기도 하고, 나의 실제 성향에도 웬만큼 부합하는 편이기 때문에 기를 쓰며 안 믿는다고 할 까닭도 딱히 없어서 그럭저럭 믿는 편이다. (사실 이런 걸 믿는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믿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게 재미있다는 걸 의미할 뿐이니까.)


인프피는 일반적으로 무던하고 부드러운 성격이며 창의성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귀엽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인프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인프피의 일반적인 특징은, 성격이 아주 소심하고 망상에 빠져 살며 비생산적이고 게으르며 회피 성향이 있고 논리적이지 못한데 감정만 앞세우고 겉보기엔 착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잊지 않고 곱씹고 있으며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고 야망이 없는 게 아니라 야망을 이루려고 노력할 의지가 없을 뿐이고 그래서 야심이 없는 척 살지만 사실은 질투가 많고 음험하다는 것이다.


뭐. 대충 맞는 말 같다. 맞는 말 하고 처맞은 져스디스에게 심심(boring)한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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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할 때는 말을 뒤집으면 된다. 나는 MBTI를 믿지 않는다. 사람을 고작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단순 무식한 폭력이며, 자기보고식 검사는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없고, 중간에 분포하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데에는 전혀 유용하지 않은 도구다.


나는 성격이 아주 소심한 건 맞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술에 취하지 않아도 대범해지기도 하고 망상에 빠져 살며 비생산적이고 게으르지만 해야 할 일은 하며 회피 성향은 예전엔 확실히 있었지만 요즘엔 그 정도는 아니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기보다는 논리적이려고 하면 적어도 웬만한 사람들만큼은 논리적일 수 있지만 애당초 논리 자체를 별로 신뢰하지 않으며 대체로 직관을 더 선호하고 감수성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물색없이 눈물을 질질 짜거나 감정만 앞세우지는 않고 겉보기에도 별로 착해 보이지는 않는데 속으로 잊지 않고 곱씹는 건 사실이기도 하고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나이도 들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서 그래도 많이 유해졌으며 이루고 싶은 야망이 있고 친밀한 관계나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구도 있는데 굳이 야심이 없는 척하려고 한 적은 없지만 겉으로 드러날 만큼 애를 쓰는 것은 꼴불견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겉으로 드러내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질투는 많은 편인 것 같기도 한데 이것도 경우에 따라 달라서 잘은 모르겠고 음험한 편은 맞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 진실을 추구하는 면도 있다.


다른 건 그냥 흘려들으면 된다. 이 글은 야망(또는 야심)에 관한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야심이라고 하면 이방원과 수양대군을 비롯해 한국에서 정규 역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으레 떠올릴 법한 야심 찬 인물들의 얼굴―물론 안재모나 이정재 같은 배우들의 냉정한 얼굴. 나는 유동근 세대는 아니다―과 함께 몇 가지 단상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그중 하나는 강호동이 진행했던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 라는 옛날 예능프로그램이고, 나는 그 방송을 아마 채널을 돌리다가 한두 번쯤 보았거나 어쩌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야심이라는 단어와 방송의 내용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내가 글을 이따위로 빌어먹게 쓰는 것은, 솔직히 말해 정지돈의 영향 때문인데, 어쩌면 정지돈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이것저것 인용하는 것처럼 나도 그냥 다른 사람 핑계를 대며 너스레나 떨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무 말이나 하고 싶거나. 나는 원래 이렇게 두서없는 글을 좋아하고 읽는 사람이 알아서 맥락을 찾아내야 하는 글을 좋아하고 읽다가 아무 생각이나 하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대로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정지돈을 좋아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나도 이렇게 쓸 뿐이다. 그래서 정지돈과 야심이 무슨 상관이냐면, 정지돈은 어느 소설에서 야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는 베르너 헤어초크의 말을 인용한다.


베르너 헤어초크는 인터뷰에서 당신의 인물들은 모두 야심이 넘친다. 왜 그런가라는 질문에 야심이 아니다, 그것은 비전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야심과 비전은 다른 것이라며 야심은 자신의 커리어나 쌓는 우스꽝스러운 짓이지만 비전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고 우주는 실제로 10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는 3차원만 경험할 수 있고 상상적인 차원에서도 겨우 4차원을 떠올릴 뿐인데 비전은 그러한 차원에 대한 생각이라고 그러니까 다른 차원을 요구하는 것, 다른 차원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
_정지돈, 「나는 카페 웨이터처럼 산다」


그러니까 야심이란 자신의 커리어나 쌓는 우스꽝스러운 짓이라고 베르너 헤어초크는 말했고 아마 정지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며 한때 나는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나 정지돈이나 베르너 헤어초크로 하여금 예술을 꿈꾸게 만들고 나아가 뭔가를 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우스꽝스러움이 아닌가, 야망이란 그러니까 비전만큼이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고 비전이 야망보다 가치 있다면 그건 단지 희소성의 문제가 아닌가야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비전이 있는 사람은 소수이므로―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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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다거


헨리 다거(Henry Darger, 1892~1973). 일생을 예술계 바깥에서 활동한―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알려진―아웃사이더 예술가.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죽을 때까지 거의 평생을 병원의 잡역부로 일한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죽고 난 뒤의 일이다. 그는 무려 15,000페이지 분량의 소설 『비현실의 왕국에서(In the Realms of the Unreal)』와 그 소설의 삽화로 쓰기 위해 그린 소묘와 콜라주 수백 점―다거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어서 온갖 잡지나 광고 사진 등을 떼어다가 따라 그렸다―을 남겼는데, 생전에 아무에게도 자기 작품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한다.


구글에 '헨리 다거'라고 검색만 해도 그의 일생을 정리해 놓은 포스팅이 여러 편 나오니 여기서 굳이 전기적 설명을 더 보태지는 않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다거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소설적으로 재현하기 위함이며 소설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대상을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시인하며 그러한 불가능 가운데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탈주로써의 글쓰기를 뜻한다.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것을 글로써 재현할 때 그것의 어떤 점에 매혹되었는지를, 그러니까 이 글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선별되고 누락되거나 비약한 게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일화에 감명을 받은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인데, 그가 수십 년 동안 타인과의 관계를 차단한 채로 살면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작업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비현실의 왕국에서』가 냉혹한 현실에 놓인 아이들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의 비밀스럽고 열정적인 창작 활동은 필생의 자가치료가 아니었나 싶다.)


다거는 야망은커녕 일체의 사회적 욕구가 없는 듯이 조용히 살다 죽었다. 내가 의문을 품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인데, 나는 정말 극단적인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의 삶을 견인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사회적 욕구라고 생각하고, 여기에는 반박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본다. 얼핏 사회적 지위와 성공에 무관심해 보이고 친밀한 관계나 사회 일반으로부터의 존경을 아주 불편해하는 사람일지라도, 아니 오히려 어쩌면 그럴수록 더, 사회적 욕구에 목말라 있을 수도 있다. (작가들은 누구나 외로운 사람들이다. 영화감독보다도 더.)


다거는 실제로 자폐증을 앓았다고 하는데, 얼마나 중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홀로 영위할 정도의 역량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나는 아마 그에게도 사회적 욕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충족시킬 방법을 몰랐던 것뿐이며 그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고 그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여가는 어떻게 선용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물어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서 조금 슬퍼진다. 어쩌면 그가 생전에 단 한 번도 자기 작품을 타인에게 보여주거나 심지어는 언급조차 한 적이 없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그가 수십 년 동안 출퇴근을 하고 길거리를 지나치고 밤에 담배를 한 대 피우러 발코니에 나왔거나 식료품을 사러 갔다가 마주친 모든 사람들—경우에 따라서는 길고양이나 들개, 생쥐일 수도 있다—을 추적해서 다거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일일이 물어본 것이 아닌 다음에야 확신할 수는 없는 일화다. 다거의 묘비에 음각된 ‘아웃사이더 예술가’라는 그럴듯한 휘장은 호사가들이나 예술품 딜러의 작품인지도 모른다.


다거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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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는 아버지를 싫어했다. 어머니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이라는 시를 썼는데 시의 전문을 여기에 수록한다.



찰스 부코스키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찰스 부코스키(번역 황소연)


아버지는 저녁을 먹다가 자꾸 소소한 격언을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음식 앞에서 떠올리는 건

생존이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달걀 껍데기를 핥게 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어쩌고저쩌고)….”

“미국에서는 하고자 하면 누구나 성공한다….”

“하늘이 돕는 자는 (어쩌고저쩌고)….”


대체 누구한테 말하는 걸까

나는 늘 아리송했고

아버지를 정신 나간 머저리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 설교 시간에

추임새를 넣었다. “헨리,

아버지 말씀 새겨듣거라.”


그 나이의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음식이 설교와 함께

배 속으로 내려갈 때면

식욕은 가시고

속은 더부룩했다.


내 생각에

아버지만큼

내 행복에 초를 치는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나 역시

아버지에게 똑같은

존재인 듯싶었다.


“게을러터진 녀석.” 아버지는 내게 말했다.

“평생 게으름뱅이로 살 녀석!”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으름뱅이로 산다는 게

이 개새끼와 정반대로 사는 거라면,

앞으로 꼭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아버지가 오래전에

죽는 바람에

내가 그것만큼은

성공했다는 걸

못 보여주는 게

안타까울 따름.




부코스키는 제목의 야망을 본문의 성공으로 치환하며 자신은 그것과 정반대로, 게으름뱅이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부코스키의 묘비에는 “Don’t try”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애쓰지 말라”는 것으로, 부코스키는 어딘가에서 사람들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왜냐하면 우리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은 정말로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라고, 이를테면 컴퓨터 앞에서 적당한 단어를 찾기 위해 한참 동안 골몰해야 한다면 작가가 되지 말라고, 왜냐하면 정말로 작가가 될 사람이라면 내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뭔가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처럼 정말로 뭔가를 원한다면 애쓰지 않아도 하게 될 것이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기다리라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그게 올 것이라고,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때는 그것을 하라고, 그리고 할 것이라면 끝까지 하라고, 어쩌면 여자친구와 직장과 가족까지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게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싸움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번에도 정지돈을 통해서 부코스키의 말을 접했는데 정지돈은 그의 묘비명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애쓰지 마라.” 부코스키는 말했다. 우리는 두려움에서 도망치기 위해 자꾸 애쓴다.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책정한다. 부코스키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도박을 했다. 그건 허무주의나 냉소의 외연을 띠지만 실은 정반대다. 그는 애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애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야망 없이 살기 위한 야망을 품었다. 부코스키는 내가 아는 작가 중에서는 가장 시원시원하고 화통해 보이는 남자지만 사실 누구나가 그렇듯이 그에게도 자기 나름의 뒤틀린 면모와 모순과 결핍들이 있었다. 부코스키는 헨리 다거가 그런 것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50세에 첫 소설인 『우체국』으로 알려지기 전까지 우체부를 포함한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하는 하층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의 학창 시절은 외모 콤플렉스와 우울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는데, 고등학교 졸업파티 때에는 홀로 서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언젠가는 자기 시대가 오리라고 분을 삭였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다시 사회적 성공욕구 또는 야망에 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려 한다. 소설적으로 재현한 헨리 다거나 부코스키의 경우에서 보듯이, 얼핏 보기에 사회적 지위에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아니 오히려 어쩌면 그럴수록 더, 사회적 성공을 갈망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급하게 요구한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인프피의 사회적 욕구를 종합적으로 다뤄보려고 했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인프피라는 분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 그다지 적절한 방법이 아니며 어쩌면 애당초 불가능한 계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서두에서 언급한 친구의 남자친구의 경우에,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어쩌면 정말로 사회적 성공욕구가 그렇게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없는 인간은, 아마도 없을 테지만, 사회적 성공욕구는 사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사회적 성공욕구가 아예 없는 인간은, 물론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성공욕구가 덜하고 약한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차라리 인프피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예술가 (지망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결국 또 나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예술가란 으레 자의식에 고통받기 마련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상 자의식의 부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얼핏 자의식이라고 하면 사회와 동떨어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신경쓰는 자폐적 의식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으나, 기실 자의식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제3자의 시선으로, 물론 어디까지나 1자의 입장에서 상상한 가상의 제3자일 뿐이지만, 어찌 되었건 유사pseudo 3자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의식은 외부와 유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자의식은 외부와 긴장을 형성하며 교호 작용을 한다. 예술가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동시에 상상적3자의 시선을 매우 강렬하게 의식하고,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보다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정이므로, 예술가들은 만성적인 자기혐오와 자기비하에 시달리며 자기를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성향을 강하게 타고난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고, 20세기엔 재즈와 로큰롤을 했으며, 정신 나간 것 같은 소설이나 정체 불명의 시를 쓰고, 실제로 정신병력을 앓거나 약물 전과를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사람들이 시달리는 스트레스는 사회적 성공욕구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왜냐하면 이들은 특유의 예민함으로 인해 직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그 대가로 일상이나 친밀한 관계에서의 고통을 겪고, 그래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며, 그렇게 계속 예술가로 살다가 어느 날 자살을 하거나 객사를 한다.


한편 예술을 즐기고 동경하지만 재즈 즉흥연주를 하거나 걸작을 쓰기에는 정신적으로 좀 덜 박약하고 그래도 웬만큼 정상적인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회의 통념과 일상적인 삶의 굴레와 꿈이나 망상의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며, 정신적 이상과 사회적 성공 중 무엇이 더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둘 중 하나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쏟아부어도 되는 것인지, 애당초 자기가 정말로 그것을 원하기나 하는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며 인생을 아무렇게나 낭비하고 만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고.


나를 사회의 요구에 완벽하게 부합시키거나, 사회를 완전히 벗어나 엿 같은 인생이 어떻게 되건 간에 내 좆대로 살거나. 둘 중 무엇도 나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사회적 성공욕구와 나의 이상을 합치시키는 편이 나에게는 가장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나는 나의 사회적 성공욕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우받고 싶다. 콧대를 세우고 싶다. 거지도 같은 거지에게는 적선을 받지 않는 법이다. 적선을 하려고 해도 성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좆같다. 좆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상에 올라타 세상을 엿 먹이는 수밖에 없다. 내가 세상에 엿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 회계 같은 걸 공부할 수 없고 법 같은 걸 달달 욀 수도 없다. 공학을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존나게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역겨운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생활을 영위하며, 돈벌이를 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한다. 그렇게 성공한다. 친밀한 관계라는 건 까놓고 말해서 사회적 지위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니만큼, 일단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걸로 성공해야 한다. 그것 말고 다른 건 잘 모르겠다. 그냥 하는 데까지 해 보는 수밖에.



          

[1]


가수 백예린의 인스타 라이브에 난입한 래퍼 져스디스가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기 나름대로 백예린과 친해지고 싶었던 듯한데, 아직까지도 그가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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