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부터 이 구절을 종종 되뇌곤 했다. 아마 내가 뭔가 정말로 진지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게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제 회사를 관뒀다. 넉 달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추석 직후부터 설 직전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그쯤에서 멈춰도 별로 후회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그만뒀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내 꿈이 기자였겠거니 짐작하겠지. 아, 꿈이 있었는데 막상 잘 안 됐구나. 그래서 서럽다는 거구나. 그렇지는 않다. 솔직히 말하면 나한테 ‘기자’는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직업의 하나였고, 꿈과 삶 중에 대입하자면 언제나 삶에, 그것도 삶의 수단에 가까웠다. (실제로도 기자 생활은 폭력적이더라.)
나는 할 게 없어서 기자가 됐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꿈일 직업에 대해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게 아닌가 싶어 신경 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까.
굳이 기자가 된 이유를 찾자면 그냥 글밥을 먹으면서 살고 싶었달까. 덤으로 이런저런 경험도 해볼 수 있을 테고.
돌이켜 보면 기자라는 일이 그런 나이브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할 일은 아니었지 싶다. 일이 재밌어서 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래도 기자는 내 이름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고, 남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는 일이니까.
뭣보다 기자는 글발이 아니라 두 발로 하는 직업이다. 머리보다는 몸을 굴리는 직업이다. 머리도 굴리긴 하지만 깊게 굴리기보다는 잽싸게 굴려야 한다. 나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고, 스스로를 보채면서 다그치기엔 심히 게으르고 더딘 사람이다.
그래도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동기들 하나하나에게 특히 많이 배웠다. 더 늦기 전에 해봐서 다행인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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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청승맞은 글을 끄적이고 있는 까닭은 오랜만에 늦게까지 깨어 있어도 되기 때문일까.
원래 SNS에 글을 올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기나 일기 비슷한 걸 쓰더라도 좀 더 프라이빗한 공간인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편이다. 아무 데도 올리지 않거나.
인스타그램을 거의 남들이 뭐 하고 사는지 구경하기 위한 관음용으로만 쓰는 건 딱히 올릴 거리가 없기도 하고, 드물게 올릴 거리가 생기는 날에도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난 그게 민망하다. 게다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거라고 해 봐야 전부 나 잘 살고 있다는 류의 인정 투쟁용 게시물인데, 나는 삐딱하고 뒤틀린 사람이라 그런 건 비겁하고 편리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들 잘 사는 건 아닐 텐데. 잘 사는 사람도 항상 잘 사는 건 아닐 테고. (사실 그다지 비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기쁘고 즐거운 일을 올린다면 추잡하고 불편하고 서글픈 일도 올려야 밸런스가 맞는다. 그게 아니라면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일이라도 올리든가.
그러니까 이 글은 다소 막막하고 조금 서글퍼서 올리는 글이다. 누구나 기쁠 때보단 서글플 때 좀 더 진실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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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새벽 두 시다. 머리는 혼곤하고 몸은 찌뿌둥하다. 지난 서너 달 동안 밤 10시~자정 즈음에 누워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졸려 죽겠다. 정신적인 압박감도 심했다. 친구들의 카톡 알림은 모두 꺼 놨고, 업무 관련 톡만 알림을 켜 두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릴 때마다 움찔거렸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힘들어서 도망쳤다고 생각할 거다. 딱히 부인할 생각도 없다. 뒤지게 힘들었던 건 맞으니까. 애초에 그닥 내키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망쳤다 한들 별로 주눅들진 않는다. 아마 기율이 조금 약하고 사람을 조금 덜 쥐어짜는 언론사에 갔더라면 더 오래 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길어도 3년을 넘겼을 것 같진 않다. 나는 누가 기삿거리를 제보한다고 해도 반가움보단 귀찮음이 앞서는 사람이다. 이런 기질이 나중이 된들 바뀌진 않겠지. 이제 와서 말인데, 나는 취재하다 만나는 사람이 명함을 달라고 하면 짜증부터 밀려 왔다.
그런데도 조금 속이 쓰리긴 하다. 오늘 회사에 들러 사원증과 노트북 랜카드를 반납하고 왔다. 그제까지만 해도 관둔다고 말하고 나서 아주 개운하고 후련했는데, 막상 반납하고 나오니 맘이 편하지만은 않더라.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맘에 걸린다. 손에 쥘 뻔했다가 반납해야 하는 급여와 사회적 안정도 아른거린다.
기자 명함이 주는 사회적 아우라와 회사가 주는 경제적 자유. 당분간은, 또는 아주 길게, 내가 누리지 못할 것들이다. 나는 다시 백수가 됐고, 아마 2년 정도는 다시 쪼들리며 살아야 한다. 20대의 2년은 그 이후의 2년보다 더 귀중하다. 모르고 관둔 건 아니지만 역시 조금 씁쓸하긴 하다.
삶은 폭력적이다. 일을 하건 일을 하지 않건.
샤를 보들레르
보들레르는 자기 형에게 쓴 편지에서 “나와 어울리는 직업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썼다. 보들레르는 아버지에게 꽤나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고, 생산적인 직업 없이 글이나 끼적이면서 살 수 있었다. 가족들은 재산을 탕진하는 그를 금치산자로 지정했다.
나와 어울리는 직업도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보들레르처럼 연금 복권이나 타 먹으면서 글이나 끄적이는 게 내 꿈이다. 글로 밥벌이를 하면 더 좋고. 적어도 백 년 정도 회자될 걸작을 쓸 수 있다면 더 좋겠다.(아마 백 년 뒤쯤엔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 자체가 거의 소멸할 테니까 그 정도로 만족하련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삶에 뚜드려 맞아도 입에 풀칠할 돈은 벌어야 한다. 난 보들레르가 아니고 물려받을 유산도 없으니까. 삶을 내팽개치고 꿈에만 올인할 배짱도 없다. (사실 삶은 지금도 반쯤은 내팽개치고 되는 대로 살고 있긴 한데. 아무튼.) 그걸 배짱이라고 봐야 할지도 의문이다. 생계 수단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되도 않는 꿈 타령하는 것만큼 꼴불견은 없다.
이럴 때 꿈이 있다는 건 그다지 축하할 일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꿈이 있어야 행복한 줄 아는데, 꿈이 있는 사람이 꿈이 없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불행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방금 내가 지어낸 거긴 하지만 아마 비슷한 연구 결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꿈을 이루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 가까이 가는 경우조차 별로 없으며, 가까이 갔는데 닿지 않으면 가깝기 때문에 더 애가 타니까, 꿈이 있는 사람은, 만약 그게 정말로 진지한 꿈이라면, 대체로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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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은 희망 없이 말하는 것보단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희망 없이 수다를 떠는 데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냉소주의자의 태도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유운성은 희망과 낙관을 대별하며 희망은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조건을 응시하는 일이라고 했고, 낙관은 주가 전망 따위와 같은 일종의 진단이라고 했다. 이 글은 주가 전망 따위의 글은 아니고 냉소적인 수다는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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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도말은 자기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주려고 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뭔가를 넣으려고 한다. 손에 뭔가를 넣으려다 보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뭔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뭔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
이 편지는 도말이 아내에게 쓴 마지막 편지다. 도말은 갑작스럽게 죽었다. 나는 도말을 금정연의 글에서 짧은 인용구로만 접했고, 도말이 죽기 직전까지 뭔가가 되고 싶었는지, 다시 말해 죽기 직전까지 정말 살아 있기는 했는지, 뭔가 되고 싶었다면 그게 과연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도말은 『마운트 아날로그』라는 소설을 쓰다가 끝맺지 못하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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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아는 형과 부평에 있는 펍에 갔다. 첫 잔은 버드와이저를 병째로 마시고 두 번째 잔으로 시퍼런 칵테일을 마셨다. 그냥 맥주나 마실까 하다가, 칵테일 이름이 ‘리브 포에버’여서 시켰다.(맛은 리스테린을 섞은 감기약 같았다.) 나는 누가 인생 책이나 인생 영화를 물어보면 한두 개만 꼽기 어려워서 대충 넘기거나 그때마다 생각나는 걸 말하는 편인데, 인생 노래를 뽑으라면 어렵지 않게 거의 같은 노래를 뽑곤 한다.
인생 곡?: 오아시스의 Live Forever요.
한선이형하고도 최근에 음악 얘기를 나눴는데, 형과 나는 오아시스가 비틀즈 이후 최고의 밴드라는 데 동의했다. 한선이형은 라디오헤드도 좋지만 결국 오아시스로 돌아온다고 했다. 오아시스는 삶을 긍정하는 밴드야. 나도 언제나 오아시스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치, 오아시스는 삶을 긍정하는 밴드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노엘과 리암 형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술 취한 아버지에게 줘터지면서 자랐다. 삶은, 때때로 그런 걸 몰라도 되는 아이들에게까지도 폭력적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삶을 사랑한다. 리브 포에버는 오아시스의 정수를 담은 곡이다.
나는 송라이터로서뿐만 아니라 작사가로서의 노엘도 높게 평가한다. 리브 포에버가 그 증거다. 오아시스의 노래 가사는 대부분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어떻게 보면 현대시 같기도 한데, 그런 와중에도 한두 문장씩은 기억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다.
난 아마 내가 되고 싶었던 어떤 것도 되지 못할지 몰라.
지금은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왜 그런지 찾아야 할 때지.
현실이 폭력적이라면 음악은? 소설은?
현실이 폭력적이기 때문에 음악이 탄생하고 문학이 존재한다.
아무튼 칵테일은 이름값을 못했다. 더럽게 맛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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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이 말하는 것보단 침묵하는 편이 낫다. 글을 쓸 때마다 되새기지만 나는 자주 냉소로 흐르고 가끔 희망을 그린다. 아무렴 그 정도면 된 것 아닐까. 대책 없는 희망을 떠들기보단 적당히 위악적인 냉소가 더 나을 때도 있으므로.
그런 뒤엔 다시 오아시스로 돌아가야 한다.
써 놓고 보니 재작년에 썼던 소설과 글감도 방향성도 비슷하다. 픽션을 논픽션으로만 바꿔 놓은 것 같달까. 그동안 게으르게 읽고 보고 썼구나 싶어 조금 자책하다가, 작가는 평생 한 권의 책을 쓰는 거라는 말이 떠올라서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사람이 일 년 만에 어떻게 바뀌나. 그래도 앞으로도 맨날 같은 글만 쓸 순 없으니까, 다른 글을 쓰려면 더 읽고 보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
기자를 관두니 막막하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거니까 어쩔 수 없다. 사실 해야 하는 일은 단순하다.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일을 마련하기. 다른 한편으론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정진하기.
오늘은 『GV빌런 고태경』이라는 소설을 읽었다. 퇴사하자마자 또 머리 아프기는 싫어서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을 읽었다. 가볍고 조금 진부하기도 하지만 괜찮은 소설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건 나에게 누군가 해 줬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작가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스스로 들려주는 사람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같이 고생한 동기들을 포함해서) 지금 치이고 힘들어할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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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쓰는 글은 늘 마무리가 어렵다.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을 땐 머리와 꼬리를 이어 붙이면 된다고 누가 그랬다. 그러니까 꿈은…
꿈은 설레고 삶은 희망적이다. 일을 하건 일을 하지 않건. 꿈을 이루건 이루지 못하건. 잠시 설레다 오래 서럽고 잠깐 희망적이다 한참 폭력적일 테지만, 상관없다. 그 정도면 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