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사랑이 필요한 사춘기 어른이니까
감기를 수시로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찾아온데.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우린 이상한 게 아니야.
팔을 잘 못쓰면 팔이 아프듯 마음도 잘 다루지 못하면 아픈 법이니까.
뒤늦게서야 정주행을 했다.
[괜찮아, 사랑이야.]
5년도 지난 이 드라마를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발견했을 때 마지막으로 본 한국 드라마가 언제였더라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나는 프랑스에 오면서 한국 드라마를 본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애타게 만드는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다음 주까지 또 어떻게 다음회를 기다리냐며.
한국 드라마를 볼 시간에 프랑스 영화를 한편 더 보면서 불어 공부를 더 하자는 현실형 타협이 이유.
드라마에서 말하는 사랑의 기승전결 이야기는 뻔해서. 관계도 복잡한 연애 이야기에 머리 쓰기 싫어서.
라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끔 미스터리 드라마는 봤지만 로맨스 드라마는 볼 시작도 안 했다.
그러니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가 될 시기에도 '달달한 로맨스의 한국 드라마'는 관심 밖이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끝난 후에, 역주행을 할 생각으로 몇 편 달달한 장면들만 뽑아서 보긴 했지만 이것도 이내 관두었다. 괜히 연하들을 누나 마음 설레게 하는 '정해인'으로 빙의해서 보게 될까 봐.
사랑에 상처가 어디 있고, 손해가 어디 있어
사랑은 추억이나 축복 둘 중 하나야.
드라마는 마음의 병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굉장한 몰입력으로 며칠 만에 역주행을 끝냈다.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형체가 없는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사랑이 어렵다고 말한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내가 아파했던 순간의 트라우마가 사랑에서도 이겨내야 할 미션으로 던져지고 마치 그 미션을 성공하면 내가 꿈꾸던 형태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만 같지만 트라우마를 꼭 이겨내야 할 필요도, 이겨냈다고 해서 내가 꿈꾸던 형태의 사랑이 보이는 건 아니다.
열심히 나는 트라우마를 견뎌냈지만 그 연애가 끝나면 남은 상처로 인해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새겨졌다고 탓할 수 있으니까. 그 연애는 손해였다고 너라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고 상대도 자신도 미워하게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의 시작을, 그리고 사랑의 끝을.
다시는 꺼내기 싫은 추억일지라도 그 이별이 내 마음을 찢어놓듯한 끝이었어도 인정해야 한다.
그래도 아름다운 순간은 존재했고, 그 순간들의 어느 선 위에서 한 조각만큼은 둘 다 진심이었음을.
매 순간마다 사랑일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을 포착해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 '내가 사랑하는 만큼 너는 아니냐고' 따질 수 없는 거란 것을. 우린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나면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추억이 되어 내 마음의 어느 서랍에서 꺼 내 볼 수 있는 담담함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랑이라 믿고 싶은 순간이 오면 그 추억 속의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그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우린 사랑이 필요한 사춘기 어른이야
파리는 사랑을 하는 도시다.
사랑을 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도시여서 그런가 하고 보면 그냥 이 나라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솔직하다.
내가 널 사랑하게 된 것도, 그리고 너와 함께 많은 것을 나누고 싶은 것에 대한 본인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말이다. 그중 사랑을 머리로 계산하며 하는 타입도 있지만 다수의 남녀는 감정에 충실한 편이다.
'사랑'을 하고 사는 문제가 인생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믿는 만큼 성별에 관계없이 먼저 대시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다 완전한가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핍이 있는 사랑 속에서도 그들은 솔직한 자신들을 보여주며 서로 다른 둘을 인정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맞춰간다. 사랑이 꼭 같아야 할 필요는 없다. 너의 방식과 나의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비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방식은 솔직해야 한다.
이게 사랑이라고 인정하기 시작하면 맞추어 가는 방식은 찾아지게 되니까. 사춘기 아이가 철이 들어가듯 그렇게 사랑도 맞춰가면서 철이 듦을 인정하면 내 결핍 따윈 부끄럽지 않게 될 것임을.
서로의 결핍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꼭 솔직해지라고 스스로도 늘 다짐한다.
우린 사랑의 결핍이 있어 아픈 사람이 아닌, 그저 사랑이 필요한 사춘기 어른이니까.
사랑은 상대를 위해 포기하는 게 아닌, 해내는 것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연애상담을 해 오는 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
함께 있어 좋은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을 만나라고.
좋은 인물에 좋은 배경의 사람이 꼭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가 하면 그런 건 아니니까.
건강한 조건의 사람도 물론 좋지만 건강한 에너지와 정신을 가진 사람은 오래 두고 보아도 널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조언한다.
함께 있어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드는 사람, '본연의 나'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하고 나면 본인의 에너지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자연스레 반응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나와 에너지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온 날이면, 뭔가 즐거운 자리였던 것 같은데 내 기가 빠진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의 에너지로, 이성이든 동성이든 만남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조언해준다.
내 마음을, 과거를 그리고 미래를 머리가 아닌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친구든 연인이든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병을 안고 사는 현대인이니까.
에너지가 맞는 사람.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인해 치료받고 치료해주라고 말해준다.
서로에게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결국 상대를 위해 포기하는 게 아닌 해내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장재열(조인성 분)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라디오 DJ를 겸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말은 늘 '굿나잇 친구들'로 끝내는데, 드라마의 막바지 즈음에는 '굿나잇 장재열'로 마무리한다.
정신병을 인정하고 사랑을 통해 그 병을 완치한 본인에게, 그리고 누구나 마음의 작은 병 하나 즈음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을 대표로 하는 인사 같아 보여 개인적으로 모든 주인공들이 한 컷 씩 받으며 스스로에게 '굿나잇'이라고 하는 장면이 참 기억에 남는다.
우리 누구나 마음에 한 가지의 트라우마는, 그리고 사랑에 대한 미련과 애착과 두려움과 설렘을 갖고 살아가는, 숨기지 않아도 되는 병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녕하노라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안녕을 물어주며 살아가기 바쁘다.
정작 본인의 상처와 마음은 돌보지 못한 채.
인정하고 나면 별게 아닌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우린 다 그렇게 감기를 수시로 앓듯 마음의 병을 수시로 앓기도 하니까.
고통과 원망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과 불행도 주겠지.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더불어 주겠지. 그 정돈돼야 사랑이지.
괜찮아, 사랑이야.
-5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