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쩌면 봄 아니면 겨울
봄에 태어난 이유인지 나는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라는 계절을 가장 좋아한다.
반면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겨울'이라는 계절은 왠지 덜 반갑다.
파리에 살기 시작하면서 새삼 그런 '겨울'의 여러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회색 빛'이다.
물론 도시마다 감추고 있는 색깔 속에 계절이 더해지면, 그 모습들은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생소한 색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파리의 겨울은 특히 어두운 '회색'을 띤다.
여행자들에게는 나름의 낭만을 선사하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파리의 겨울이겠지만 파리지앵들에게 햇빛 하나 나지 않는, 구름과 비 마크만 새겨진 날씨의 겨울 파리는 이미 우울함의 상징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11월부터 봄이 오기 전까지 약 몇 개월간 회색빛의 겨울을 살고 있노라면, 겨울의 색은 문득 갑작스러운 이별 후 찾아오는 적막함으로 칠해진 '진회색'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긴 터널 같은 겨울이 지나 해가 비치기 시작하고, 일기예보에 흥미를 가질만한 날씨들이 이어지는 봄이 시작되면 우리는 혹시 모를 기대감으로 봄을 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게 사랑은 봄 아니면 겨울 같은 시작과 끝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나 내 마음의 봄을 살았다가, 몇 번의 계절을 거쳐 회색빛의 겨울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우리가 겪는 사랑이라는 건, 어쩌면 봄 아니면 겨울일지도 모른다고.
회색빛에서 무채색이 되었다 다시 연한 파스텔로 물들여지는 봄을 만날 때까지는 그 긴터널의 끝이 어디 즈음인지 인지 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서서히 터널 끝에서 스며드는 빛 속에서 잊고 살았던 봄내음을 기억해내곤 한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은 또 온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괜찮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은 사랑도.
기나긴 이별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봄이라는 색을 입을 테니까.
나의 혹은 우리 누군가의 사랑을 기록합니다.
'우린 어쩌면 봄 아니면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