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특이한 면접 후기
10년 전 지금 나는 취준생이었다. 정확히는 2013년 6~7월 동안 한 건설사 금융팀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사를 2014년에 입사했다가 2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나는 유독 취업에 욕심이 많았다. 누가 봐도 좋은 회사를 가고 싶었기에 지원도 참 많이 했고 면접도 많이 봤다. 인턴도 3번이나 했고, 인턴을 지원할 수 없던 저학년에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도 2번이나 했다. 취업 시즌도 통틀어 4번이나 겪었다. 한 시즌에는 최소한 30개, 많게는 60개씩도 지원했다. 그랬기에 국내 유명한 대기업 중에서는 지원해 보지 않은 회사가 없는 것 같고, 면접도 참 많이 봤다. 면접을 많이 본 것과 결과는 별개였지만 말이다.
오늘은 문득 지난 취준생 시절 경험했던 독특한 면접 형태들이 생각나서 적어보려 한다. (쓰고 보니 면접 후 다 탈락한 곳이다..)
1. 등산 면접 (feat. 생명보험협회)
모 회사의 축구 면접과 더불어 양대산맥을 이루던, 소문으로만 듣던 등산 면접을 본 곳이 있다. 바로 생명보험협회다. 2013년 하반기로 기억한다. 서류와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1차 면접이 바로 등산 면접이었다.
등산 면접이 무엇이냐면, 말 그대로 면접관들과 지원자들이 함께 하루종일 등산을 하며 면접을 진행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집결하여 저녁 회식 자리까지 이어지는, 그야말로 종일 면접이었다. 아침에 집결하면 면접관 2명과 지원자 5명 정도가 한 조를 이루어 종일 함께 다니게 된다.
당시 대학생이 등산복이 어디 있겠는가. 급한 대로 학교 친한 형에게 등산복부터 등산가방, 등산화까지 올 세트를 빌렸다. 당시 H백화점에 재직 중이던 형이었기에 꽤 폼 나는 등산복이었다. 등산 전날 나는 스니커즈 초코바와 ABC 초콜릿, 바나나 등을 챙겼다. 등산을 하면서 다른 지원자들과 면접관님들과 함께 나눠 먹으려고 말이다. 사실 이건 대외적 명분이고, 그렇게 점수를 따려던 내 속셈이 있었다.
종일 면접을 보고 내려와서는 산 밑에 흔히들 많이 있는 그런 산장 같은 고깃집에 갔다. 지원자인 우리는 여기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어설픈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숟가락 젓가락과 티슈를 세팅하고, 주는 술을 고개를 돌려가며 남김없이 받아먹고, 술을 따를 때는 상표를 가리면서 따르는 등 어디서 주워들은 사회생활 팁을 총동원했다.
그것만 해도 빡센 면접이었건만, 이 면접은 하이라이트는 저녁을 먹은 식당에 설치되어 있던 노래방 기계였다. 설마 했지만 지원자 우리는 거의 모두 노래를 한 곡씩 했다. 노래 부르기를 비교적 즐기는 나였기에 무난하게 했던 것 같다. 다른 지원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만하면 면접 충분히 잘 본 거야!'하며 내심 기대하며 면접이 종료되었다.
그러고는 일주일 뒤 그곳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당시에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면접인데 많이 아쉬움이 남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아쉽지도 않다. 하하하-
2. 합숙 면접 (feat. 기업은행)
취준을 하며 유일하게 합숙으로 면접을 본 곳이 있다. 기업은행이었다. 당시 1금융권 시중은행들은 면접을 비교적 빡세게 보기로 유명했다. 꼭 합숙이 아니더라도 종일 면접을 진행하는 곳도 꽤 있었다. 대부분 은행들은 인턴제도를 운용하여, 인턴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기도 했다. 어쨌든 지원자를 면밀히 살펴보고 최대한 종일 함께 있으면서 지원자의 여러 면을 관찰하려는 취지로 이해되었다.
면접은 이른 아침 시간 기업은행 을지로 본점으로 집결하여 기억은 잘 안 나는 어딘가의 연수원으로 가서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가는 버스에서 옆에 앉은 사람과 뻘쭘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연수원에 도착해서도 처음 보는 다른 지원자이자 동시에 경쟁자들과 함께 방을 쓰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1박 2일 동안 면접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무엇보다도 면접을 함께 보는 지원자들과 삼삼오오 팀을 이루게 된다. 이 팀이 1박 2일 동안 아웃풋을 함께 내야 할 전우조이다. 이들과 가볍게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1박 2일 동안 주어진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둘째 날 오전에 최종 PT를 하는 것으로 해당 면접은 모두 종료가 된다. 이러한 활동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중간중간에 불려 나와 여러 면접관들과 나 혼자의 인성 및 직무면접이 진행되기도 한다.
조별 과제는 밤늦게까지 준비했던 기억이다. 거의 2~3시에 잤던 것 같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날 받은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고 욕심을 내야 하니 잠을 잘 수가 없다. 나름 경영학과 출신이라고 팀플과 케이스스터디, 전략 수립 등에 노하우가 많다고 생각했지만, 학교에서 하는 것과 실전은 또 느낌이 조금 달랐다. 그렇게 부랴부랴 준비했건만, 이곳도 결국 이 면접을 끝으로 탈락했다.
3. 두 번의 최종 면접과 예비합격, 그리고 최종 탈락 (feat. 현대종합상사)
아, 이곳은 지금도 가슴이 아리는 곳이다. 바로 현대종합상사이다. 두 번의 시즌에 걸쳐 둘 다 최종 면접을 갔고, 둘 다 예비합격을 했으며, 둘 다 결국 최종 탈락을 했다.
사실 이 회사는 내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내가 모스크바 인턴을 했던 회사가 바로 현대종합상사 모스크바 지사였다. 물론 현대종합상사에서 직접 채용한 인턴이 아니라 한국무역협회에서 파견 보낸 형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현대종합상사 소속으로 6개월을 인턴을 했다. 그랬기에 다른 지원자들보다도 회사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당시에 '될 때까지 한다'라는 현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던 시기였다.
첫 시즌은 2013년 상반기였다. 나름 회사에 대해 취준생 치고는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공부도 더 많이 해갔다. 이 회사는 최종 면접에서 MH 회장님이 직접 면접에 나온다. 말로만 듣던 정씨 일가의 한 분을 눈앞에서 보게 되어 신기했다. 그러나 면접에서 잘 절었던(?) 나는 아쉽게도 그 최종 면접에서 예비합격을 하고 말았다. 예비합격이 무엇이냐면, 합격자 중 미 입사자가 있을 것을 대비하여 몇 명의 지원자를 더 뽑아두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나는 추가 합격되었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다음 시즌 곧바로 다시 지원했다. 인적성 검사도 거의 비슷한 문제였고, 1차 면접도 비슷한 뉘앙스였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최종 면접까지 갔다. 그리고 MH 회장님을 또 만났다. 신기하게도 그분은 날 기억하셨다. 그랬기에 면접 분위기도 그전 시즌보다는 부드럽게 흘러갔고 나는 내심 합격을 확신했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는데, 또 예비합격이었다. 그리고 약 2주일이 지나고 다시 최종 탈락 소식을 전달받았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회사와 나는 핏이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될 때까지 한다'라는 현대 정신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사막에서 히터를 팔고 북극에서 냉장고를 판다는 종합상사의 개척 정신에도 내가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면접관들은 그런 나를 미리 알아본 것일까?
이외에도 별별 형태의 면접을 다 겪었다. 영어 면접, 세일즈 면접(즉석으로 무언가 아이템을 던져 주고 팔아보라는 면접), 토론 면접(즉석에서 토론 주제를 던져주고 선착순으로 찬성/반대를 정해서 토론에 임하는 면접), 식사 면접, 1대多 면접, 多대1 면접, 多대多 면접 등등.
지금 생각하면 추억거리지만 당시 절실하게 임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지금의 좌충우돌하는 내 모습도 10년 뒤 돌이켜봤을 때 그렇길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