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많이 읽는 것)이 다는 아니다.
2023년 상반기가 끝나가는 오늘, 올해 내가 읽은 책은 40권이다. 2016년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매년 조금씩 독서량을 늘려왔고,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매년 평균 읽었던 책 수를 뛰어넘었다. 40이라는 양적 데이터로만 보면 만족스럽다. 그런데 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40권을 읽었으나 사실 그 40권의 책 제목을 하나하나 기억해서 열거하기도 어렵다. 기억에 남는 내용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더 어렵다. 이쯤 되니 독서에 대한 현타가 온다. 나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습득했는가?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되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독서, 자기계발과 관련된 이웃 분들이 조금씩 생겼는데, 가끔 이러한 '무작정 독서'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일정 기간 동안 금독(독서를 멈춤)을 하는 분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결론은 이러했다. 독서는 소화이고, 적용이다. 아웃풋이 없는 독서는 잠시 내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월급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웃풋은 내 삶으로의 적용이 될 수도 있고,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내가 읽고 습득한 것에 대한 소화가 필요한 것이었다.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하며 1일 1포스팅을 목표로 삼았지만, 이 또한 한 달이 조금 지나고 지속할 수 없었다. 쓰기를 위한 쓰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또한 결국 인풋을 소화하지 못한 것에 기인했다.
내 경험상 인풋의 함정은 이렇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솔직히 약간 마음이 편해진다. 왜? 내가 무언가를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읽은 지식이 어떻게든 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위안 때문에.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지식의 축적은 임계점을 넘어서면 폭발적인 성과를 낼 수 있고, 평소에 생각하지도 못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의 대화, 나에 대한 고민, 나에 대한 분석이었다. 체계 없는 독서는 목적 없는 행위였다. 그저 이 답답하고 괴로운 삶에 위안을 주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현실의 나를 마주하는 것이 귀찮고 두렵고 구질구질해서 책으로 위안을 삼았다. 책이 읽기 싫을 땐 강연이나 자기계발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이 또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나의 큰 착각이었다.
이윤규 변호사님의 1시간짜리 유튜브 강연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 (이 또한 물론 유튜브를 보다가 얻은 인사이트지만, 이런 인사이트 하나 얻기 위해 투입하는 유튜브 시청시간은 가성비가 너무 낮다.) 이 분은 변호사라는 본업 외 공부법 전문가인데, 공부를 잘하기 위해, 특히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학의 정석을 펴놓고 챕터1부터 무작정 파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급적 빨리 연습문제와 실전문제에 돌입하고, 내가 모르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메타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극단적으로는 정말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해설지부터 먼저 공부한다는 사례도 소개하셨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분간은 나 자신과 많은 시간을 독대하려 한다. 나를 본질적으로 파헤치려 한다. 나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내가 처한 상황을 알며,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나를 분석하고자 한다. 수많은 책에서 해답을 얻어 보려 했고, 내 인생을 바꿀 한 마디, 한 문장, 터닝 포인트를 찾으려 했지만 결국 정말 읽어야 하는 것은 '나'였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이런 당연한 걸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이런 뻔한걸 이제야 깨달았다고?"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혹시 나와 같이 책과 강의의 인풋 속에서 방황하고 있던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