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에녹 Jun 16. 2024

일본어 까막눈의 극장판 하이큐 영화 관람

오사카 문화생활 (1)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의 오사카 한 달 살기는 현지인들과 최대한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이 주된 컨셉이다. 현지인의 문화생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영화 관람이 아니겠는가. 특히나 해외여행을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은 아니다. 바쁜 여행 일정 속에 최소 2~3시간씩 되는 영화 관람 일정을 넣기는 쉬운 일은 아닐 테니 말이다. 여유롭게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한 달 살기에 딱 맞는 문화 활동인 것 같아 꼭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었다.


교토 벚꽃 구경을 하고 온 날, 저녁 시간이 조금 남아 난바의 한 영화관으로 갔다. '토호(TOHO) 시네마'라는 영화관이다. 해외 영화를 포함하여 약 10개의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하지만 일본어 까막눈인 내가 만만하게 고를 만한 영화도 없다. <오펜하이머>나 <듄>과 같은 해외 영화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오사카까지 와서 해외 영화를 보는 것도 뭔가 아쉬웠다. 그 중간의 절충점이 되는 영화가 한 편 있었으니, 바로 배구 애니메이션 '하이큐'의 극장판 버전,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이하 '하이큐')이었다. 이미 이 영화를 한 번 본 친구에게 물었다. "너 이거 또 봐도 괜찮아?" 친구가 대답했다. "나야 너무 좋지!" 그렇게 일본어 까막눈이 그나마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하이큐 티켓을 바로 구입했다.



오사카에서 영화관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비단 영화 자체를 보고 싶어서만은 결코 아니다. 영화 티켓을 구매하는 과정도 경험하고 싶었고, 영화관에서 판매하는 팝콘과 콜라도 직접 구입해서 먹어보고 싶었다. 영화관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일본인들의 영화 관람 문화는 혹시 우리와 비슷한지 혹은 다른 것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무엇보다도 여행객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그 공간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나 조금 오사카 현지인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 아니겠는가.


극장판 하이큐는 이미 두 달 정도 전에 개봉해서 이제 곧 상영 종료를 며칠 내 앞두고 있었다. 한창 상영 중일 때는 일본 내 영화 박스 오피스 1위였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영화관 1위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 아니고 또 어디 있을까. 새삼 이 나라의 애니메이션 위력이 느껴졌다. 내가 영화를 관람한 날 역시 거의 상영 막바지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관객이 영화관을 찾아왔다. 한국어를 쓰는 우리를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한다. 그래, 영화관에서 외국인을 잘 보는 일은 없겠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영화가 아닌 이상 한국 영화를 외국인이 보는 것을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영화 티켓을 구입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팝콘 타임이다. 하이큐보다는 영화관 자체에 관심이 있던 나는 오늘 이 오사카 영화관에서 꼭 팝콘과 콜라를 먹는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보다 젯밥에 관심인 셈이다. 우선 일본의 팝콘은 우리나라만큼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다. 기본 소금 베이스의 팝콘과 카라멜 팝콘 정도가 전부였다. 음식 종류도 다양하게 있는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듯했다. 그런데 음료는 조금 더 종류가 다양했다. 특히 소다 종류가 제법 다양하게 있었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메론소다와 팝콘 반반 맛을 주문했다. 



여기서부터 신기했던 것 하나. 가져가기 편하게 하라고 그런 것인지, 웬 받침대에 팝콘과 음료를 담아 주었다. 팝콘을 놓는 자리도 음료를 놓는 자리도 쏙 들어가는 것이 이것 참 편리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 받침대의 진짜 효용은 단순히 받침대가 아니었다. 그 받침대의 음료 부분을 상영관 좌석 사이 팔걸이 음료 거치대에 끼울 수 있는 것이었다. 즉 두 사람이 갔을 때 가운데 거치대 하나만으로 두 잔의 음료와 라지 사이즈 팝콘의 거치를 해결할 수 있는 것. 보통 한국에서 영화를 보면 각자 양 끝에 음료수를 두고 가운데에 팝콘을 두고서는 꽤나 불편하게 팝콘을 먹지 않는가. 팝콘 박스를 내가 가지고 있으면 옆의 친구가 먹기 불편하고 옆의 친구가 가지고 있으면 내가 불편한 그런 식 말이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이 싹 사라지는 도구였다. 친구와 나는 감탄했다. "이거 한국 CGV, 롯데시네마에다가 납품하고 싶은데?" 하지만 갈수록 영화 관람 인원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금세 깨닫고는 그 아이디어는 금세 멈췄다. 어쨌든 일본에 오면 이런 사소하지만 우리의 생활을 훨씬 편리하게 해주는 멋진 아이디어 제품들을 종종 만난다.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실행까지 해내는 일본인만의 독특한 도전정신과 창의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이큐에서 진행하는 소소한 이벤트도 진행 중이었다. 하이큐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랜덤으로 미니 포스터를 하나씩 나눠주는 식이었다. 친구는 지난번에는 없었던 이벤트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상영관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굿즈를 개봉했다. 아뿔싸, 나와 친구가 받은 것이 둘 다 같은 선수가 나오고 말았다. 친구는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하이큐 굿즈를 하나라도 득템 했다는 것에 내심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포스터는 두 장 모두 친구에게 주었다.



자막 없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배경지식마저 없던 나에게는 더욱 그러할 터. 중간중간 친구로부터 간략하게 스토리 전개에 대한 속성 과외를 조금씩 받으며 겨우 영화를 따라가 보려 했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교토 벚꽃 구경을 위해 집을 나선 후 종일 돌아다닌 피로가 그제야 몰려왔는지, 나는 영화를 보는 도중 결국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아마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 소리도 나에게는 자장가로 다가왔을 게다. 문득 눈을 떠 보니 영화는 하이라이트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는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래도 오사카 영화관에서 팝콘과 콜라를 마시는 나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만족스러운 편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는 길에는 곧 있으면 개봉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버전 <탐정들의 진혼가>(이하 '코난') 포스터가 크게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난은 일본에서 전 국민적으로, 그리고 전 연령적으로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코난의 극장판 개봉은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길거리나 쇼핑몰 곳곳에 극장판 코난의 포스터나 홍보물이 붙어있는가 하면, 맥도날드, 쿠라 스시 등 대형 프랜차이즈에서도 코난과 콜라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비주류 문화라고만 생각했던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는 이렇게나 주류 중에서도 주류 문화임을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통해 조금은 관심이 생겼으니, 이만하면 일본 문화에 조금 더 스며들었다고 해도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덕후의 성지, 메이드 카페 거리, 덴덴타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