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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17. 2024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모네 전시회 관람

오사카 문화생활 (2)


오사카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했지만 미술 전시회 관람은 생각지도 못했던 테마였다. 평소 전시회를 즐겨 가는 편도 아니었을뿐더러 미술 작품 쪽은 영 보는 눈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오사카에서 화가 '모네'의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곧 끝나간다면서 한 번 보러 가겠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안 가더라도 본인은 갈 생각이라면서 말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홍대 미대를 나오고 30년 이상 미술 선생님으로 재직하셨던 터라 자연스럽게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는 친구 따라 모네 전시회에 한 번 따라가보게 되었다.


말은 친구 따라 간다고는 했지만 나 역시 전시회 소식을 듣고는 내심 가보고 싶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전시회에 가면 축구나 야구 경기 또는 영화관 못지않게 진짜 오사카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눈앞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현지인처럼'이라는 나의 한 달 살기 테마에 미술관 관람 역시 제격이었다. 또 하나는 전시회가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키타하마와 나카노시마 지역을 산책하면서 나카노시마 미술관 근처까지 걸어간 적이 있는데 그 현대적이면서도 여유로운 특유의 미술관 외관의 분위기가 좋았다. 안 그래도 내부가 궁금했는데 이 참에 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살기를 위해 오사카에 온 다음 날 처음으로 간 곳이 키타하마였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만에 다시 키타하마에 왔다. 벚꽃으로 가득했던 키타하마와 나카노시마 섬이 이제는 푸르른 나무로 우거진 것을 보며 새삼 한 달의 시간이 이렇게나 금세 흘렀다는 것을 느꼈다. 그땐 제법 서늘한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꽤나 뜨겁기까지 한 바람도, 하나 둘 양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그렇게 키타하마 역에서 내려 약 20분 정도 걸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 도착했다.



나카노시마 미술관에 도착했는데 이게 웬일. 어마어마한 인파가 줄을 서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간 날은 전시회가 끝나기 이틀 전날이었고, 골든위크를 맞이한 일본인들이 대거 모네 전시회를 관람하러 온 것이었다. 엄청난 인파에 일단 줄을 서고는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입장하기까지만도 최소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렸다. 줄을 서며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전시회 하나를 보기 위해 이렇게나 많이 줄을 선다고? 맛집도 어지간해서는 줄을 잘 서지 않는 나로서는 꽤나 색다른 충격이었다. 더욱이 줄을 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내 또래보다도 윗세대의 어른들이 많아 보였다. 최소 우리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60~70대 어르신들. 날도 더운데 이런 어르신들이 이런 전시회를 하나 보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줄을 서면서까지 기다리는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예술의 전당이나 현대미술관에 가면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일까. 또 한 번 문화 강국으로서의 일본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역시나 내가 알던 세계는 참 좁디좁다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미술관에 입장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 Monet, 1840~1926)'는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고 한다. 반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 가장 사랑하는 화가만 보더라도 양국의 취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전시회에 와서 보니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그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확 와닿았다. 역시나 특별했던 것은 일본인들의 관람 태도다. 지난번 벚꽃 축제에서 보았던 그 일본인들의 학구열이 여기서도 느껴졌다. 그림 한 점 한 점을 유심히 보는데 최소 5~10분씩은 쓰는 듯했다. 그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옆에 써진 설명까지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심지어 굉장히 많은 인파가 줄지어 관람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누구 하나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그렇게 미술 작품들을 보고 씹고 맛보며 소화하듯이 즐기고 있었다.



전시회는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100여 점 가까이 되는 작품들을 시간 순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연속해서 보다 보니 아무래도 그림의 퀄리티도 제각각 차이가 있다. 나 같은 그림 문외한이 봐도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걸작이 있는 반면 그저 별 감동이 없는 작품들도 더러 있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의 화풍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지금 내 모습을 빗대어 보기도 했다. 직장 생활만 오래 하다가 글쓰기라는 예술 활동에 처음 도전하는 나 역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나만의 글 색깔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는 꽤나 잘 써진 글도 가끔 있는 반면 내가 봐도 영 별로인 글도 수두룩하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 보니 글의 색깔도 계속해서 달라진다. 가장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다. 


일평생 이렇게나 많은 그림을 그렸으니 모네는 꽤나 성실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분이 좋으나 나쁘나 매일 같이 그림 그리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일 것 같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는 사계절이 다 나타나 있고, 장소도, 날씨도 그림에 따라 다양하다. 나 역시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어떤 날은 그냥 의무감에 숙제처럼 글을 쓰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또 너무 신이 나서, 소위 말하는 '삘(feel)"이 꽂혀서 글을 쓰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매일 같이 글을 쓴다는 것이다. 모네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의 삶을 작품으로 보다 보니 글을 쓰는 나로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약 1시간 정도의 관람이 끝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기념품 샵에 가는 길로 이어졌다. 그럴듯한 기념품을 하나 구입해서 "나 모네 전시회 다녀왔어!"라고 뽐내고 싶었지만 헝그리 백수 여행자인 나에게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아쉬운 대로 보았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의 엽서 하나를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기념품 샵 역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기념 굿즈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굿즈의 민족'인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굿즈를 좋아하고 소비하니 자연스럽게 캐릭터 IP 산업이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와중에 눈에 띄었던 하나는 '모네 X 스누피' 콜라보였다. 콜라보 이름은 'PEANUTS meets MONET'. 인기 캐릭터 스누피가 이번 모네 전시회와 특별 콜라보한 굿즈 상품 역시 몇 가지 판매하고 있었다. 일본에 와서 느낀 것은 일본이 캐릭터 콜라보 이벤트를 정말 잘한다는 점이다. 캐릭터 팬들의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콜라보를 계속 던져 주니 소위 말하는 '덕질'을 안 하고 배길 수가 있을까.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여전히 흥미로운 것이 가득한 오사카 한 달 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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