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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에녹 Jun 18. 2024

노래방의 원조, 일본 가라오케

오사카 문화생활 (3) 


유년 시절부터 노래방을 참 좋아했다. 특히 내가 나고 자란 부산은 노래방이 무척이나 많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모이는 곳은 늘 부산대 앞의 노래방이었다. '오래방'도 참 많이 갔다. 서울에서는 '코인 노래방', 줄여서 '코노'라고 부르는, '오락실에 있는 노래방'을 줄여서 우리는 오래방이라 불렀다. 또한 부산과 서울 양쪽에 각 20년씩 살아본 바로는, 부산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에 비해 노래방을 훨씬 자주 즐기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래방도 1991년 부산 광안리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부산 출신으로서 노래방에 대해서는 이처럼 할 말도 많고 추억도 많은 셈이다.


그러한 한국식 노래방의 원조가 일본의 '가라오케'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술을 판매하는 노래방'을 가라오케라고 하는, 한국식 표현이 또 따로 있지만 말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이 가라오케의 어원도 재미있다. '가짜'라는 뜻의 '가라'와 '오케스트라'의 '오케'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가 가라오케인 것이다. 즉 가짜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 음악이 아닌 기계음으로 연주되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할 수 있는 기계 또는 시설을 의미하는 것이 가라오케의 어원이라고 하니 흥미롭다.


서론이 꽤 길었지만, 본론은 오사카에 왔으니 가라오케는 한 번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혼자 갈 수는 없고 나와 함께 가무를 즐길 수 있는 친구 B와 역시나 함께 했다. 거기에 추가로, 뒤에서 소개할 B의 일본인 친구, 정확히는 재일교포 3세인 H도 함께 했다. H와의 첫 만남에서 우리는 1차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바로 노래방에 갔다. 물론 술 한 잔 없이 말이다. 내 친구 B도 오사카에 와서 노래방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가고 싶어 하긴 했지만 막상 발길이 안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던 중에 진짜 현지인 Y를 만났으니 H의 안내를 받아 비교적 편하게 노래방에 입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에는 유명한 가라오케 프랜차이즈가 2개 있는데, 하나는 '빅에코(Big Echo)', 그리고 하나는 '잔카라'다. 오사카 토박이인 H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난바의 한 잔카라 가라오케에 갔다. 1층 입구로 들어갔는데 웬 남자 둘이 로비처럼 보이는 공개적인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 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페이스도 계속해서 노래하고 있었다. "이건 우리의 노래방이 아니라 노래 주점인데? 내가 여기서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며 순간 긴장되었다. 놀란 표정으로 H에게 설마 여기서 부르는 거냐고 묻자, H는 웃으며 여기가 아니라 위에 방이 따로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노래방 입구에서부터 열창하고 있는 다른 손님을 만난 일은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안내를 받고 6층으로 올라갔다. 알고 보니 이 건물 전체가 가라오케 건물이다.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6층에 내리니 마치 호텔 복도처럼 쭉 방이 들어서 있었고, 그중 우리에게 지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일본의 가라오케에 오다니. 유년 시절부터 부산에서 부단히 노래방을 다녔던 나로서는, 노래방의 본고장 일본에서 가라오케에 입성한 것이 꽤나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노래방보다는 비교적 밝은 방 내부의 조명과 인테리어,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른 모니터 화면, 버튼식이 아닌 액정화면의 리모컨 등 어느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구경도 하며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라오케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생각보다 한국 노래가 많다는 점이었다. 아니, 적어도 우리가 찾는 한국 노래는 대부분 다 있었다. 특히 BTS의 팬이기도 한 H가 찾는 BTS 노래는 대부분 다 있었다. 우리의 대표적인 K팝 스타, 싸이의 노래 중 B가 좋아하는 노래 <나팔바지>도 있었다. 점점, "어? 이것도 있다고?" 싶은 생각에 더 옛날 노래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 노래에도 관심이 생겼다는 H는 무려 2001년에 나온 남성 듀오 'UN'의 <파도>라는 노래도 안다고 했다. 설마 23년 전에 출시된 이 노래가 있을까 하고 검색했더니, 세상에나, 있다. 이 정도면 우리가 부를 만한 한국 노래는 전부 다 있겠다 싶었다.



노래방과 다른 가라오케만의 특징도 몇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우리나라는 노래방에 가면 물조차도 모두 사 마셔야 하지만 일본은 물을 포함한 각종 소다 음료가 모두 무료라는 점이다. 오히려 식당에 가면 우리나라는 물이든 반찬이든 무제한 제공이지만 일본은 작은 반찬 하나도 돈을 받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또 한 가지는 가라오케에 들어가면 리모컨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노래 검색용, 하나는 음식 주문용이라는 점이다. 즉 가라오케 내에서 음식도 주문하고 술도 주문하는 형태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노래 주점처럼 '부어라 마셔라' 식으로 음주가무를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코인 노래방 같은 공간에서 가볍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곁들인다는 개념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비용은 선불이 아니라 나오면서 최종적으로 결제한다는 것도 우리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가라오케에서 이런저런 노래를 불렀지만, 그중에서도 나의 일본 노래 애창곡, <Tsunami>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강현수(V.One) 씨가 <그런가봐요>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그 노래의 원곡이다. 보컬 트레이너 친구 Y가, 약간의 콧소리가 있는 내 목소리, 그리고 내 감성과 꽤 잘 어울린다고 종종 말해주었던 노래이기도 하다. 아마도 한국 노래방에서 100번도 넘게 불렀을 이 노래를 오사카 가라오케에서 부른다는 게 나에게는 꽤나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많이 불렀던지 가사도 줄줄이 외우는 그런 노래다. H는 나더러 이 노래 부를 때 일본어 발음이 왜 이렇게 좋냐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당연하죠. 100번도 넘게 불렀으니깐요. 노래방을 너무나도 좋아하던 부산의 그 중학생이 오사카 가라오케에 와서 일본인에게 일본 노래 잘한다는 칭찬도 받고. 출세한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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