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가니까 어때? 좋아?

서울살이 20년, 경주살이 2개월

by 김에녹

경주에 이사 온 지 두 달이 되어 간다. 사실 이곳에 올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경서와 함께 막연히 시골에서의 삶, 지방 소도시 라이프를 꿈꾸기는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하며 경서와 네이버 지도를 탐색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주에 사촌누나가 있는데 거길 가볼까?" "오빠 고향 부산이니까 그 근처로 가볼까?" "나 어릴 때 평창에 별장이 있어서 매 주말마다 평창에 갔는데 너무 좋았어."와 같은 대화가 오갔다. 그러나 정작 한 곳을 정하지는 못했다. 서울을 떠나고 싶었지만 명분이 없었다.



명분은 우연히 생겼다. 경서가 지원한 회사 중 한 곳에 덜컥 합격한 것이다. 근무지는 경주였다. 지원할 때부터 설마 되겠어, 하고 지원했던 곳이다. 서류 심사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러 오라 할 때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 이러다 진짜 서울을 떠나는 거 아냐? 그 설렘과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경서는 회사에 붙었고 입사가 결정되자마자 우리는 경주로 방을 보러 내려왔다. 그리고 이틀 동안 집을 알아보고는 한 집을 택했다. 3일 뒤 서울에서 이사했다. 이 모든 게 열흘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온 이곳에서의 삶은 만족스럽다. 경주의 좋은 점을 꼽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공기가 좋다. 파란 하늘을 얼마나 자주 보는지. 구름이라도 몇 점 떠 있으면 그림이 따로 없다. 맑디 맑은 하늘을 보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은, 하늘의 구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구름은 매일, 매 순간 다르다는 사실이다. 밤하늘은 또 어떤지. 얼마나 많은 별들이 보이는지 모른다. "어, 저거 북두칠성이다!" 하며 어린 시절 별을 보던 동심으로 돌아간다.



둘째, 사람들이 좋다. 나야 고향이 부산인지라 경상도 사람의 투박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 물론 나도 서울에 올라가 이 무뚝뚝함을 씻어버리려 오랜 시간 노력했지만. 걱정되는 건 아내였다. 서울 토박이, 본적마저 서울인 그녀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의 삶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 부산 사람이라고 해서 처음엔 걱정했다고 했다. 수년 전 부산에 여행을 갔을 때 거친 부산 사람들의 언행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주는 달랐다. 경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친절했다. 부동산 사장님도, 커피숍 사장님도, 식당 아주머니도. 부산 사람인 나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어, 경상도 사람이 이렇게나 친절하다고? 교회에서 만난 경주 사람들을 보며 그러한 인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셋째, 물가가 싸다. 경주는 아직 밥 한 끼에 1만 원을 넘지 않는 식당이 많다. 국밥집도, 밀면집도, 백반집도 그렇다. 아슬아슬하게 8,9천 원대의 물가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다. 요즘 서울의 밥 한 끼 물가는 1만 원을 훌쩍 넘어 만이천 원, 만삼천 원을 향해 가고 있다. 물론 소득 수준 차이도 있겠지만, 치솟는 물가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라 만족스럽다. 할인마트나 시장이 많은 것도 만족스럽다. 서울에서 장을 보려면 3대 대형마트(이마트, 롯데, 홈플러스) 중 하나를 가야 했다. 여기선 지역 특화된 할인마트가 많다. 그런 곳은 확실히 물가가 저렴하다.



넷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도시다. 경주는 인구수는 24만 명밖에 안 된다. 규모로만 치면 작은 도시다. 그러나 경주는 과거 신라의 수도였다. 수많은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도시다. 일본으로 치면 교토, 이탈리아로 치면 로마와 같은 도시다. 관광자원이 넘치고 넘쳐 발에 치이는 도시다. 실제로 우리 부모님 세대의 수학여행 1순위는 경주였다. 아직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관광도시가 가지는 인프라를 고스란히 주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점이 좋다. 어딜 가도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도로나 표지판이 잘 정비되어 있다. 작은 도시지만 결코 작지 않은 도시다.



하지만 이 정도 이유라면 뭔가 아쉽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역시 여유로운 삶이다. 아무래도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있다.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모를 여유가 보인다. 비단 경제적 여유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 거다. 소득 수준으로만 친다면 서울이 높아도 훨씬 높겠지. 그러나 경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유로웠다. 2번에서 말한 친절도 그 여유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하고 예술에 관심을 가진다. 곳곳에서 열리는 공연이나 전시회에는 나이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악기나 운동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작년 오사카에서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히메지라는 도시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열린 재즈 페스티벌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오신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경주에서 히메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경주 분들은 혹시나 이곳에서의 생활이 불편하진 않을까 염려한다.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편의라고 느끼는 것들을 피하려 서울에서 왔다. 조금은 불편하게, 조금은 더 천천히 살아가려고 이곳에 왔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불편함은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더 자연에 가깝고, 더 여유로운 삶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곳이 참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