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획이 싫어요

기획을 잘 못하는 건 비밀

by 김에녹

'기획'이 싫다. 정확하게는 기획된 콘텐츠 같은 게 싫다. 기획을 잘 못하는 탓도 있다. 아무튼 기획된 무언가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무언가가 좋다.


2004년 대학가요제에서 Ex(익스)가 부른 <잘 부탁드립니다> 무대 영상을 오랜만에 봤다. 기획되지 않은, 순수한 끼 하나로만 승부를 보던 시절이다. 예전엔 이런 가수가 많았다. 음악 르네상스라고 하는 80,90년대에는 이런 가수가 많았다. 음색도, 무대 매너도 가지각색이었다.


2000년 중반을 넘어가면서 소위 '뜨는 가수', '잘 되는 노래' 같은 공식이 생겼다. 그 공식대로 하면 최소 중박 이상은 치는 결과가 많아졌다. 순수함은 조금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획이 들어왔다. 기획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누구를 타겟으로 어떤 컨셉을 보여줄지와 같은 것들을 사전에 준비하게 되었다.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말도 이쯤부터 생겼다.


요즘은? 모든 게 기획되어 나온다. 보기 좋고,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고, 완벽해 보인다. 인간은 그렇게 완벽해지고 싶어 한다. 기획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무언가 인간미가 없다. 정나미가 안 느껴진다.


책도 그렇다. 철저히 기획된 '잘 만들어진' 책보다 진정성 있는 마음속 한 구절에서 감명을 받는다. 진짜 그 사람의 속내를 들으려 글을 읽고 책을 보는 게 아닌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기획되었나. 안네의 일기는 기획되었나. 그냥 매일 하던 게, 내가 좋아서 하던 게 예술이 되는 거다.


기획은 순수함을 떨어뜨린다. 기획은 계산적이다. 기획은 진짜 내면의 의도보다는 표면적인 근거가 중요하다. 기획은 지나치게 분석적이다. 기획은 과정보다 결과 중심적이다. 기획은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기보다는 목적 중심적이며 목표 지향적이다.


기획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함이 좋다. 좀 못 하면 어떻고, 좀 잘 안 되면 어떠한지. 블로그 판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일상 글만 있는 블로그 세상은 아름답다. 기획된 블로그가 들어오면서부터 블로그 판은 삭막해졌다. 정보 면에서는 도움이 될지언정, 블로그에서만 느끼는 낭만을 사라지게 했다. 심지어 그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 기획이 들어갈수록 낭만은 사라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