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삐끗한 날
알고 지내던 동생이 해외로 배낭여행을 간다 전하던 날이었다. 쉽게 집 밖을 나서지 않는 저에겐 대화 중간에 차오르던 부러움은 간혹 스쳐 지나가는 봄바람일 거라 착각했다. 그런데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곧 여행을 떠난다던 동생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실체를 모를 무언가가 마치 아지랑이처럼 마음속에 피어오르고는 했다. 여행을 다녀오기에 충분한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나서야 나는 결심하게 된다. '나도 여행을 떠나자'라고.
시험을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은 터라 여행 계획은 세세히 잡아보질 못했다. 해외는 생각조차 안 해봤고 그러니 여행지가 자세히 소개된 자료도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나름 여행기 같은 서적을 참고하면서 발 가는 대로, 길 닿는 대로 걸어볼까 하는 행복한 고민도 했다. 나만의 주제를 가진, 기억에 남을 근사하고도 새로운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기에. 처음 혼자 떠나려던 여행이어서 뭐든 즐거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시험을 앞둔 어느 날 나는 그만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허리를 다치니 고심하며 짜 놓았던 여행 일정이 머리 속에서 송두리째 사라졌다. 통증이 심했고 따라서 한동안 서 있기도 어려워서 어떻게 치료할지, 이것 말고는 어떤 계획도 떠오르질 않았다. 여행은 고사하고 당장 물을 마시러 가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통증을 조금 견뎌낼 수 있게 되자 벌써 김이 새버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집달팽이가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소식에 바깥세상 좀 구경해보겠다고 나섰는데 갑자기 비가 와 버린 꼴이었다.
누워있다 보니 별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일상을 탈피할 수 없을까. 단 하루라도 새로운 날을 누릴 기회를 얻지 못할까. 따스한 봄바람이 반가워 집을 나서려는데 때마침 무너진 허리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 아닌가 하고. 아픈 몸으로 시험을 겨우 치르고 얻은 휴식을 대상이 없는 원망으로 채우기만 했다. 하지만 동생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전혀 괴롭지 않았다. 도리어 부럽다 못해 나와 다른 삶을 그려나가는 모습에 신기해하고 경탄스러워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건강이 차차 회복되자 더 나아지려면 자주 걸어 다녀야 한다는 처방을 따라 동네 여행을 했다. 그러다 지치면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짧지 않았던 몇 주 동안 나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해보곤 했다. 돌이켜볼 때마다 원망이나 부러움은 희미해지고 아쉬움만 짙어지는 듯 보였다. 그때 좀 더 조심했더라면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로 후회를 이어가던 도중 카페에서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간혹 사람들이 찾아왔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당연히 그들 앞에서도 나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설명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만남을 가진 후 집으로 걸어오던 딱 그만큼의 거리를 매 번 같은 질문으로 채웠다. '내가 뭐가 부럽다는 거지?' 부럽다는 표현이 무슨 의미인지는 사실 서로 알고 있었다. 눈을 흘기는 질투나 빼앗고 싶은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대화하던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상대방의 삶을 인정하고 때론 동경하는, 사랑이 담긴 애정표현이었으니.
어쩌면, 부러움은 질투나 시기로 이어지는 문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발견하는 기회의 문턱이 되기도 한다는 깨달음을 바보스러운 내 처지를 한참 털어놓고 나서야 알았던 것 같다. 사람이 아프고 나면 평소 보지 못하던 것을 알아차릴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한다. 내 경우가 그랬던 것이겠다. 허리를 구부릴 수 없어 내 몸인데도 씻을 때마다 상체 외에는 관심을 쏟지 못한다는 처지가 어처구니없었다. 이전엔 막상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저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은지만을 곱씹었다.
미처 발견 못했던 내 모습을 마주하는 날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그게 상대방의 입을 통해 시작된다면 예상할 수도 알아차리기도 어렵겠다. 덕분에 오랜 시간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 너 앞에서는 자기 속을 솔직히 얘기할 수 있다는 칭찬, 너는 나를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네 말은 신뢰가 가서 좋다는 위로. 그래서 부러워하던, 그래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왜인지 모르게 우리는 서로 더 많이 '솔직하게 부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줘야 한다는 면에서.
나는 가지지 못한 너의 이러한 점이 난 부러워. 이런 표현은 자격지심이 드러나는 거라고 너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는 바람처럼 지나가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젠 봄날의 아지렁이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말로 느껴졌고 내게 전해주던 진심에 감사하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아직 떠나지 못한 여행을 그려보았다. 여행은 그런 삶들이 부딪히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나와는 다른, 내가 가지지 못한 그들만의 삶의 색채가 길 위에서 만나는 일을 말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작은 기쁨이 된다. 그리고 기억하게 한다. 나는 누구에게는 영감을 주고, 세상은 좀 더 돌아볼만한 곳이라는 호기심을 일으켜 줄 사람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생각을 말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이러한 '잠재적 감사 유발자'들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적잖은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것도 더하고 싶다. 다름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는 부러움으로 우리가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