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든 일이든 '해야 하는 일'이 무작정 즐거운 날은 드물다. 한 번 시작하면 오랜 시간 동안 지켜야 할 덕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는 일부터 골치가 아파온다. 인내는 기본이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 소문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키워야 한다. 진행하다 생기는 지나친 경쟁심과 근심과도 싸워야 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몰두할 때마다 도리어 시간을 내어 조용히 혼자 상상일기를 써봤다.
하루를 돌아보면서 기사처럼 사실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을 넘어서 가능한 대로 나와 마주한 모든 인물이 되어보는 작업이 있기에 상상이 된다. 눈에 보이는 글보다 뇌에 새겨진 이야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특성 때문이다.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가상의 곳에 혼자 남아서 극본을 쓰다 보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삶을 재구성하다 보니 말로는 내뱉지 못할 울분이 쓰이기도 했고 부끄러운 삶을 고백하는 자전적인 내용이 자주 남겨지기도 했다. 마음의 문장을 하나씩 상상의 세계로 옮겨 적다가 눈을 감으면 저절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쌓이자 잊어버리는 소중한 기억도 점점 늘어갔다.
어떻게 하면 잘 생각해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가상의 장소를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익숙한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주 만든 장면은 조금 어두운 공원의 밝은 가로등 아래 조용히 앉은 벤치였다. 왜 '어두운 공원의 가로등 아래 벤치'냐고 물어본다면 내세울만한 답은 없지만, 그 장면이 나에게 가장 포근했다고 말할 수 있다.
벤치에 제가 앉아있지는 않다. 그 벤치에는 관찰했던 사람들의 상황과 대화 내용이 함께 그려졌다. 계절에 따라 벤치엔 하얀 눈이 덮이기도 했다. 소복이 쌓인 눈길 위로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지나치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중 하나였다.
상상일기가 항상 좋지만은 않다. 왜곡이 자주 일어나는 공간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새롭게 그려내다 보면 사람이 얼마나 편향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쉽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희미해지거나 끊긴 기억의 사슬을 개연성으로 메우다 어느새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믿어버리게 되므로. 더구나 자신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버린다.
덕분에 머리로 적는 상상의 세계는 철저히 상상으로 남아야 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유동적인 마음의 세계에 장벽을 세워둘 수는 없지만 표지판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 '당신은 상상의 세계로 입장하고 계십니다'.
상상이 일으키는 왜곡을 역으로 이용한다면 여러 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오랜 상상 끝에 내린 제 결론이었다. 세상과 상대방에 대해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의지가 있어야만 하고, 착한 마음은 덤으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언제나 새롭게 시작할 여지를 만들어내는 씨앗이 마음이란 밭에 심겨있다. 잘 다듬기만 한다면 좋은 상상력을 맺어낼 수 있다.
사람들은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구성할 힘과 가능성이 부모된 사람들의 가치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사의 말 한마디로 학생은 자신의 미래를 다르게 그려낼 수 있다. 사람은 추측만 할 뿐,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에 상상력을 존중받은 어린이가 세상을 자신의 상상으로 바라볼 여지를 얻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이 인생을 바꾼다는 말이 그리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글의 누군가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사람의 수만큼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나의 상상극장 안으로 다시 돌아간다. 동그란 빛의 영역을 만들어낸 상상 속 가로등 안으로 사람들의 발이 보인다. 바쁘게 혹은 느긋하게 지나간다. 바쁜 발들은 지나쳐간 행인들, 잠깐 만났던 사람, 그리고 집중하지 못한 대화 속 주인공의 것이다. 느긋한 발은 마음에 담아두었던 사람,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 그리워했지만 겨우 잠깐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기억이다.
어떤 기억은 마치, 오래 밝은 빛을 본 눈의 장면처럼 잘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목소리가 기억난다. 들었던 아무개의 소식들, 어제 다녀왔던 까페에서 마주친 얼굴들의 이야기, 의도치 않게 나누었던 마음속 깊은 생각들이 다시금 들려온다.
기억들이 쌓이면 상상의 극장이 열리는 때가 다가온다. 사실 상상보다 분석을 먼저 하곤 하지만, 분석이라는 작업은 굉장한 정신적 노동이라 오래 진행되지 않는다. 가까운 과거는 명료하게 보관되겠지만, 오래전 기억과 섞일수록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분석가는 피곤해진 나머지 손을 흔들며 책상 위 쌓아둔 '과거의 사진첩'들을 다 휘저어버리는데, 그때가 바로 상상일기를 펼칠 시간이다. 저것보다 이렇게 행동하면 더 멋졌을 텐데, 이런 말이 더 어울렸을 텐데, 손을 잡아주면 더 위로가 되었으려나 하고 상상일기를 써 내려간다.
한 지인이 마치 섀도우 복싱과 같다고 물어왔었는데, 그런 면도 있는 것 같다. 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간혹 여러 사람을 섞어 놓은 가상의 인물도 등장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벤치에 앉은 인물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듣고 내가 말하기도 하고, 또는 내가 벤치에 앉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듣기도 하며 일기를 쓰는 펜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상상의 펜도 항상 아름다운 춤만을 추지는 않는다. 살아가며 마주했던 '해야 할 일들'이 상상의 장소에서 마주치기 싫은 어두운 기억으로 재탄생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좋았던 기억'도, 그 기억보다 더 현재에, 지금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 덕분에 새로운 감정과 분위를 뿜어내며 나타난다. 덜 아픈 기억으로 바뀐 장면도 있지만, 가끔 끔찍한 부분만 잔뜩 모인 '벤치'가 나타나기도 한다(사실 그것은 더 이상 벤치가 아니었다).
특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이유로 어묵 국물을 언제부턴가 가로등 옆에 두었다. 왜 어묵 국물이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이 부분도 대답할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겨울이라면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벤치'와 함께 기억하기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겨울이 다 지나가버리자 이번 해 어묵을 한 번도 사 먹어보질 못한 게 아쉬워졌다. 기분 좋은 상상을 실제로 비슷하게 해보는 일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은근한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동네 근처엔 '어두운 공원의 가로등 아래 벤치'를 닮은 곳이 없어 못 간다지만, 몇 군데 있는 포장마차는 미처 들리질 못했으니 아쉬움이 더 커진다. 아마 올해는 사람을 만날 일도, 밖에 나갈 일도 별로 없던 터라 그랬을 거다. 이전에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묵을 먹으러 자주 포장마차를 들렸다. 추운 밤에 김서린 안경 너머로 맺히는 하얀 물방울, 그리고 어묵 국물을 마실 때 다시 시야를 가리는 포근함이 너무 좋았다.
감히 말하건대, 상상이 주는 즐거움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상상이 부여받은 힘은 현실을 낙관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발견한 어두운 현실을 이겨낼 힘, 그리고 그 일상을 사는 의미를 찾게 도와준다.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창조해낸 상상은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을 새로이 해석하고 미래를 만들어내는 씨앗을 품어낸다.
요새 며칠 째 아무것도 일기장에 남기지 못했다. 얇아진 일기장만큼이나 상상극장은 커튼도 두꺼워졌다. 극장의 문을 자주 열만 한 씨앗을 찾으러 나가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꽃샘추위가 다 지나가기 전에, 이미 도착한 봄에게 투정을 부리러 나가야겠다. 그리고 다시 가로등 밑으로 돌아올 거다. 따뜻한 어묵 국물이 있는 곳으로, 미래를 열 씨앗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