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난과 구조

사랑이라는 벽에 희망을 걸어두기

by 쓴쓴

조금 지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지 않았던(순전히 제 주변인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영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지인의 호의 덕분에 무료로 관람했던 기억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글을 저장해 둔 시각을 확인하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직후에 급히 남겼던 날이 떠오른다. 그만큼 잊고 싶지 않은, 어떤 잔잔한 여운을 붙잡고 싶었던가 보다. 잠깐 있다 사라질 강렬한 감동보다 오래도록 묵히고 삭혀서 더 음미하게 될지 모른다는 직감, 그래서 이제야, 어쩌면 이제서라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나는 그 영화에서 '기적'을 보았던 것 같다.


영화는 미국에서 일어난 비행기 조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추운 겨울의 강에 불시착했지만 승무원을 포함해 승객 전원이 무사했던 믿기 어려운 구조 사건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은 그 비행기를 운전했던 기장의 이름과 같은 '설리'인데, 만약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제목에서 신파적인 줄거리를 예상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전원 구조라는 전설 같은 줄거리에 할리우드라는 소스를 버무려 미국의 전형적인 영웅 영화를 탄생시켜도 무방하므로. 그만큼 누가 봐도 '설리'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에 좋은 영화다.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 떼와 부딪혀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설리는 항공의 역사에서 전무했던 사건을 마주했다. 설상가상으로 관제탑이 지시한 근접 공항에 갈 만큼 남은 동력이 없다는 사실을 베테랑의 직감으로 알아차린다. 그는 곧바로 허드슨강으로 기체를 돌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설리는 그것으로 사고조사위원회에 회부된다. 바로 이 부분이 필자가 꼽은 첫 번째 명장면이고 한국인이었다면 더욱 놀랄만한 지점이었다.


우리의 눈이 보는 설리는 영웅일 것이다. 승객뿐만 아니라 비상상황에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승무원까지도 살려낸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당장 상패를 주어도 모자랄 판에, 조사위원들은 저마다 조사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자질을 의심다. 심지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그가 판단 착오를 내렸다고 다. 관제탑이 지시해 준 공항에 착륙하지 않았던 그의 결정이 적절하다고 증명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결과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필요 이상의 행동 때문에 자칫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책임을 지라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설리는 그것에 괴로워한다. 자신이 실제로 잘못을 저질렀다면, 하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그는 비행사로 살아온 평생의 업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자괴감과 모두를 구한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는 과거의 확신 사이에서, 비행기의 추락을 환영으로 볼 정도로 힘들어다. 그러던 도중 자신의 이 '머뭇거림'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을 집어내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까지 머뭇거렸던 시간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적용해달라 부탁다. 머뭇거림의 짧은 시간, 그러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까지 걸렸던 시간이 추가되자 조사위원회가 가야 할 곳이라 주장했던 '공항'에 비행기는 도착하지 못하고 추락다.


이곳이 제가 놀랐던 두 번째 부분이다. 설리 개인의 심정을 지켜보는 관람객은 그를 이해하는 만큼 조사위원회가 그를 대하는 모습이 미울지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처음부터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제안을 수용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밝혀진 자신들의 과오를 모인 기자들 앞에서 곧바로 인정다. 그리고 전원 구조의 결과를 만들어 낸 그에게 표해야 할 감사도 잊지 않는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말 바꾸기다. 그들의 말에서 일관된 태도를 때문이겠다. 이러한 변환은 청자에게 신뢰를 주는 태도다.


보는 내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들의 책임감, 대응방식, 사건 후 조사의 공공성 등, 비교할수록 부끄럽고 아픈 기억만 떠올랐다. 그들의 구조와 우리의 참사 사이에는 다른 점이 아니라 도리어 틀린 점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새롭지 않은, 하지만 여전히 힘든 감정을 일으켰으니. 그런데 이전의 직감을 따라 남겼던 메모를 묵혀두지 않고 글로 마무리하겠다는 주된 동력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글의 결론이자 제가 발견했던 '기적'은 바로 그다음 장면이다.


설리는 자신을 칭찬하는 위원에게 전원 구조의 기적은 자신의 공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적의 까닭을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주었던 모두에게 돌린다. 자신을 믿어 준 부기장뿐만이 아니라 조난 신고가 들어오자 구조하기 위해 나타난 헬기와 지나치던 유람선, 도움을 주기 위해 가까이 다가와 준 작은 보트,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항구로 달려 나온 수많은 구급차. 설리는 그 모든 것이 각 자리에 있게 한 이들에게 감사를 돌린다.


물론 설리는 끝까지 기체에 남아 탑승객을 찾고, 마지막까지 구조자의 수를 묻는 책임감을 보인다. 모든 이가 구출되었음을 알고 나서야 겨우 자신을 추스르는 그의 모습을 감독은 빼놓지 않았지만, 그러한 '영웅 설리'는 영화의 서막에 등장한다. 감독이 강조하고 했던 마지막 장면. 바로 추운 강물에서 신속히 건져 준 그들의 구조 덕분에 자신의 행동이 전원 구조로 이어졌다는 설리의 자기 고백을 담은 장면이다. 구조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혼자 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그의 굳은 신념을 포착해낸 것이다.


스크린을 지나쳐 나오며 신념에 찬 그 말이 사람들 사이에 숨겨졌던 기적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우리 안에 있는 기적'. 전원 구조를 가능케 한 사람들의 착한 마음들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조난은 개인의 경험일지 모른다. 하지만 구조는 그렇지 않다. 탁류가 내민 손아귀를 떨쳐내도록 하려면, 굽은 팔을 뻗어서 자신과 닮은 생명에게 손을 내어주는 용기가 필요하니 말이다. 거센 물살로 덮인 가빠진 호흡들이 목에서부터 벌겋게 오르는 것을 보면서, 저 급류가 나의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겼던 생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과 우리의 것이라는 공감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그래서 다행이다. 생각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희망을 도리어 보고 있으니.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세울 수 없는 벽과 같다. 나를 가로막는 막힌 무언가가 아니라 외부의 위협에서 우리를켜주는 무엇다. 이것은 자신의 빛깔만을 내세우지 않고 예술 작품을 돋보이게 해주는 하얀 도화지와 같고 힘들 때 버텨주는 튼튼한 버팀목과 같다. 그러기에 오늘의 연대가 사랑의 연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 사랑의 벽에 다시 희망의 고리를 걸어두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의 벽이 내어 줄 희망의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싶다.



영특한 영웅의 무용담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행인 1, 2, 3의

도전기를 듣고 싶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지만

온몸을 내어줄 초처럼

흔들리나 쉬이 쥘 수 있는

약하나 변함없는 불꽃을 가진.


여행 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초의 불을 주신 이가

그 불을 거둘 때가 있음을

함께 기억할 이가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