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칠하든 '나'의 것으로 칠할 수 있다면
서점에 들렸다. 애초에 집에서 나섰을 때부터 목적지는 몇 곳 없었고 서점 근처에서는 더 보아야 할 일도 없었기에 '들렸다'는 어색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서점은 항상 '들려야' 한다 느꼈다. 책이라는 생각이 모여서 머물다 다시 흩어지는 상징적인 장소라는 혼자만의 의미부여였다. '머문다'거나 '갔다'는 표현은 왜인지 부족하다 느꼈다.
얼마 크지 않은 서점을 거닐며 책을 고른다. 고르는 사람마다 선택하는 책이 다르다. 택해온 과거가 각자 다르듯이 말이다.
행위들의 집합소인 삶도 그렇다 보았다. 오래전부터 머문다기보다 시간의 일방성에 얹혀 잠시 들렸다 할 뿐이라고. 물론 인생이라는 서점을 택할 순 없었지만, 인생이라는 서점에서 책이라는 시간을 골라내려 애쓸 수는 있으니까. 잠시 그 시간,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뿐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호흡, 누군가의 의지에 내어주어야하는 삶.
나오던 길에 다양한 컬러링북을 보았다. 아직 칠해지지 않은 하얀 바탕의 밑그림들을 보며 느낀 친숙함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모본 같은 작은 그림이 각 장의 하단에 그려져있다. 초심자들을 위한 안내서인가.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이 풍경은 다른 색깔이면 좋을 것 같은데 라며 관심을 준다. 그리고 자연스레 옆에 놓인 고급 색연필을 보고 흠칫 놀라며 내려놓았다. 내가 보러 온 책이 있잖아.
서점을 나서니 비가 온다. 잿빛 하늘로 물든 세상이다. 다행히 우산을 챙겨왔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나가려다 우산에 눈길이 간다. 우산. 저마다의 색깔로 잿빛 세상을 채운다. 흐릿한 도화지 위에 그려진 무지개 빛깔을 본다. 난 오늘 무슨 색깔이었나. 조금 전 보았던 컬러링북의 모본이 떠올랐다. 그러자 들고있던 우산이 나와 잘 어울리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