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세계

문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나

by 쓴쓴

1. 영화 <판도라>를 보았다. 2시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에 호흡이 좀 긴 영화이지 않았나, 싶었다. 체감상 감독판을 보는듯했다는 혹평 아닌 우스갯소리도 주고받았다.


2. 하지만 분명 시의적절한 주제를 담았다는서 동감했다.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프랑스의 예술영화가 대중성을 쉽게 얻지 못한다는 맥락에서 볼 때 판도라는 그래서 적절히 좋은 영화라 서투르게 결론지었다. 주제를 부각하는 한국영화의 신파적인 요소에 아쉬워하고 덕분에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의 요즘 역할에 대한 평도 살짝 덧붙였다. 한국을 담아내는 영화는 한국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도였을 것이다.


3. 영화 진행상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없었다. 다만 배경 설명과 내용 전개에 동원되는 작중 화자의 대화가 길어지는 느낌이 아쉬웠던 기억이다. 분명 이유가 있었겠거니, 하던 차에 이 기사 덕분에 조금 이해가 되었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_m.aspx?CNTN_CD=A0002270928#cb


4. 기사를 읽다 얼마 전 책상 위에 꽂아두었던 시나리오 북이 생각나 들춰보았다. 살펴보니 순서가 바뀌거나 삭제된 신이 있었다. 물론 편집은 감독의 권한이다. 그가 기사에서 밝혔듯, 현실과 비슷한 장면이 도리어 감상에 몰입을 방해할 우려를 도려내기 위한 조치라는데에 고개를 끄덕였다.


5.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다.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대충 시나리오 북을 훑어보아도 대통령의 말이 사라졌거나 대체된 부분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감독의 의견을 지지하지만 왜인지 전개가 늘어진다는 느낌,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동어반복, 이 둘을 발생시킨 원인이 결국 작품성에도 영향을 준 것 았다.


6. 우리는 이 작품이 촬영되던 때의 세상과 다른,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사회를 산다. 덮이고 감추어졌던 모든 이면이 다 드러날듯한, 더 이상 없었으면 하지만 다 드러내야만 하는 치부와 당혹, 그리고 책임의 세계다.


7. 사람의 판도라는 언론으로부터 청문회까지 열리는 중이지만 영화가 경고하는 판도라는 이미 열려버린 상자다. 실제 있는 핵발전소가 현실을 위협하는 세계를 그린 감독은 풍요와 번영이라는 포장지로 싼 인간의 욕심을 더 주목했던 걸까. 감추어진 시대에 촬영된 판도라의 세계, 경남에 닥친 지진 전에 촬영된 영화, 라는 전제를 두고 보면 이해할 만하다. 영화는 단지 지진을 상자를 뒤흔드는 도구로 이용했다.


8. 힘들지만 벗겨내고 뒤집어야 할, 이 광장의 시기가 다 지나기 전에 영화 <판도라>가 경고한 대로 지금 이후의 시간을 염두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의 욕심과 우리들의 무관심이 빚은 판도라의 세계를 하루아침에 청산할 수 없기에 그렇다. 먼지와 땀에 젖은 옷을 벗고난 후에야 물로 몸을 씻어내듯이 안타깝게도, 갈아입으려는 노력은 벗겨내기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너무 피로한 행위다.


9. 우리는 판도라가 열린 이후의 세계를 요원한 대상처럼 느껴왔다.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 관행이라는 이름의 전통, 조직에 팔아버린 타인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상황에 익숙한 만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열려가는 실제 사람의 판도라를 보며 꿈꿔볼 만하다 느낀다. 판도라의 상자 귀퉁이에 숨어있던 희망을 찾아낸 걸까.


10. 잦아드는 모욕감과 쌓여가는 피로는 어느순간 지나갈 거라 믿는다. 관행과 무책임, 비틀린 가치판단이 쌓여 시작된 나비효과는 영화에서 그치길 바란다. 그리고 이것만이 우리의 희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재난이 상자를 흔들기 전에 사람이 먼저 열어낸 지금의 세계이길 빌게 된다. 무언가가 시작되었기에 더 많은 슬픔과 불합리를 막았다고 기대한다. 그래서 열려버린 상자의 세계는 숨겨놓은 상자의 세계에서 이미 분리되었고 곧 독립하게 될 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