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

흔들리는 그리고 겹쳐진

by 쓴쓴

아직 접해보지 못한 다른 세계로 입장하는 경험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사고방식이 이해의 틀을 개선하려는 동기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르르 떠는 이 동력은 결코 게으름과 함께 할 수 없어서 조금 더 잦은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선 칼을 들이대다 못해 정체성의 뿌리 일부마저 뽑게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작업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갑자기 열린 문처럼 미지의 세계는 두려울 뿐이다. 입장하는 이도 마저 다 통과할 때까지, 자신이 일종의 '벽을 뚫'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그것을 바라보는 자도 마찬가지로 당사자가 처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벽 너머로 굴절된 빛. 그것이 맺은 모습은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일그러진 것이 당사자인가, 당사자가 처한 상황인가는 알 바가 아니다. 그러니 사태의 모든 면을 본다 믿었던 이는 사라져 가는 이전과 일그러진 현 모습에 당혹스러워한다. 신뢰하던 감각이 자기를 속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햇빛의 방향이 흔들리는 이유는 서로 다른 곳에 서있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깨달은 사실이지만,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은 평생을 무뎌지려 무척이나 애쓴다. 자신의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그려내기 때문이다. 과한 표현은 거절당하고 과한 자극도 외면당한다. 자신이 느끼는 것을 상대가 없다고 말하는 경험은 매우 참담한 슬픔이겠지만, 민감한 이들은 익숙해지고 익숙해져야 한다. 나를 지우고 부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들의 자의식이다.


과한 혹은 풍성한 내면을 감추려 오래전부터 자신을 가둬둔 이들은 습관처럼 자신을 욱여넣듯이 숨긴다. 가장 먼저 구겨지는 것은 감정이고 가장 구김이 심한 것도 감정이다. 간혹 감정 샤워가 필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세계를 가득 채운 다채로움을 다시 보려 한다. 다행스럽게도 감정들은 밤마다 되살아나 멋대로 하루의 기억을 채색한다. 멋대로 살지 못했던 하루를 보상받고 싶어 하듯이.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을 지켜보라는 밤의 초대를 마다할 이가 있을까. 무의식이 자신을 무색무취의 사람으로 만들기 전에,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버릴 자신을 놓치 못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찾아온 낮의 무대. 터져나올 눈물은 그곳 어딘가에서 소멸된다. 차가운 인상, 무덤덤한 반응. 내가 날카로워지는만큼 세상은 무뎌진다.




가능한 한 깊은 환원적 사고를 요구하는 곳에서는 단순한 해체주의와 허무주의가 자연스럽다. 분명한 인과율 앞에서 사람마저 낱알처럼 구분된다. 하지만 실상 사람은 서로 모순된 요소들의 합이 만든 일종의 홀로그램이다. 내면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당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홀로그램은 실상 그 자체가 아니라 간섭된 빛과 반사된 빛들이 그려낸 모양이다. 빛 덕분에 보는 우리는 분명 빛이 존재한다고 말하지만, 허공에서 마주친 빛들이 그려낸 그림이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금 전 당신이 읽은 까만 활자는 정말 '주변보다 덜 밝은 빛'일뿐인가.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세계가 눈 앞에 떠오른다. 각자의 흔들림이 내뱉어지고 서로에게 닿아 겹쳐진다. 둥둥 떠다니는 거리의 얼굴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방금 마신 공기마저 주변 이들의 날숨 칵테일이다. 그래서 조금은 다행이다. 이렇게 나 홀로 있지 않다 느껴질 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