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쉬고 싶다

번아웃

by 쓴쓴

우울증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마치 숙주에 기생한 벌레처럼 몸의 주인의 의도와 다른 의지를 자꾸만 행사하려 든다.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좋아하던 책을 앞에 두고도 표지 겉장 하나를 열지 못했다. 계속 쉬고 싶었을 뿐이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루틴 routine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지 계획하고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일을 계속하도록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신체화 증후군까지 같이 앓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근데 그게 쉽지가 않다. 처음에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끼니를 거르지 않고서 약 복용을 잊지 않는 것 정도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해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알아챈다 할지라도 나의 몸은 내 의지를 거역한다. 아니 의지라는 것 자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도 오늘은 좋아하던 책 읽기를 다시 시작한 날이다. 나는 동시에 네다섯 권의 책을 읽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 어려운 내용은 헷갈려서 정리 욕구를 불태우게 한다. 덕분에 조금 어지럽지만, 조금씩 복습 겸 요약하는 습관이 베었다. 그리고 가끔은 이것이 병을 호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어보려 한다. 의사는 생각을 계속 받아 적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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