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 됨에 관하여

신체화 증후군 - 나의 인생극장?

by 쓴쓴

사계절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가제본을 받고 서평단에 참가 중이다.


노명우 작가의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어찌 보면 나에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역사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의 후퇴만큼이나 나는 심리적으로 물러나 도란도란 들려주는 이야기에 심취한 어린아이가 되었다. 마치 그림자놀이를 하듯 조심스레, 아른거리는 옛 그림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좇는다.


꽤 자주, 서평단에 참여해왔다. 본인이 가진 경제력의 한계를 분명히 아는 자로서 독서의 감상까지 일거양득을 취하려면, 이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누구보다 먼저 새로 발간될 책을 마주할 수 있으니 한 가지 이점이 더 추가된다.


다만 한 가지 제한점이 있다면 기한이 정해진 서평 제출이다. 이 점은 매 번 복불복이다. 책의 의도를 빨리 알아채거나 이미 아는 지식을 자주 만나면 서평을 쓰기에 훨씬 수월해지지만 반대라면 첫 문장을 써 내려가기조차 어렵다. 또는 쉽게 쓰인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책이라도 결이 맞지 않는듯한 책이 있다. 그러면 서평이고 뭐고 독서마저 아주 고역이다.


사실, 독서와 기록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 생각해왔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언젠가 글을 쓰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아무렴 어느 분야든 그렇지 않겠는가. 음악 감상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연주를 꿈꿔보듯이. 다만 나의 이러한 습관이 병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힘들었던 마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약을 복용하면서 쓰는 게 어려워졌다. 자주 기록하는 일이 귀찮아진 적도 있고, 무엇보다 자잘하게 들려오던 내면의 목소리들이 잘 구별이 안 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조금 둔감해진이었다.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는 약 덕분에 나의 민감성이 떨어졌다.


그 말은 나에게 역으로, 이렇게 다가왔다. '나의 민감성은 나의 병 때문이다'. 차마 병원에서 묻진 못했다. 오래전부터 지녀 온 나만의 특징을 신체화 증후군이라는 이름 하나로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다. 나는 원래 남들보다 민감한 사림이어서 세계가 허락하는 자극을 더 많이 받아들일 뿐이었다고. 그래서 미리 아프고, 먼저 반응하는 거라고, 책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과 <센서티브>에서 읽었다.


읽기 시작한 책을 소개하다가 이야기가 너무 멀리 흘러 나와버렸다. 돌아온 길을 되짚어 다시 돌아가야겠다.


야심한 시각에 이 글을 쓰면서 나의 나 됨을 고심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인생극장>이라는 이 책의 서평단에 참여하면서 운 좋게 나의 인생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용기 섞인 한숨을 조금 내쉬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