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싸우려 든 주먹을 펴 악수를 청하다

by 쓴쓴

머물다 가는 어떤 심상은 오래도록 바래지지 않는다. 선명할수록 사람을 우유부단하게 하고 붙잡힐수록 하루의 끝을 미루게 한다.


초침의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밤을 넘어 새벽으로 흐르는 혼미한 정신은 묶일 곳이 없어 세계를 떠돈다.


영화를 보고는 그냥 막 울었다. 슬픔에 잠겨 푹 가라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숨을 내뱉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미 흘러내린 것은 어느새 턱에 맺혀서 곧 바닥에 떨어질 준비를 한다.

그날, 바다

영화관을 나와 걸었다. 기억과 섞인 상상일지도 모를 풍경을 보는 듯한 기시감에 이상하게도 좀 진정했다. 스크린에 비취던 영상을 떠올리지만 확인할 겨를도 없고 지켜볼 굳은 심지도 없다. 약속 시간이 다가와서다.


분명 한낮의 관람이었지만 심야영화의 관객처럼 어둠 속으로 파묻히길 자처한다. 피로가 아니라 풀이 죽어서다. 또 불안하다. 오늘을 넘겨 보내는 나를, 그리고 나를 받게 될 내일을 걱정한다. 그래도 말했듯이 다행이다. 나를 만나줄 누군가가 시간과 함께 빠르게 걸어온다. 그 와중에 난안감에 잠겨있다.


대화에 집중하려 애쓴다. 웃다가 같이 누군가를 씹다가 상대의 말을 기다리다 또 웃는다. 그리고 다시 쏜살같이 눈 앞에 잔상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배달 사고가 나고 말 거라는, 나를 실은 하루가 내일에게 전해주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걱정거리가 나와 함께 누워있다.


그렇다. 어느새 난 누워있다.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는 여기 침대에서 어리석게도 그 모든 가능성을 생각한다. 추락하는 비행기가 내 방을 뚫고 들어오는 망상, 갑자기 깨져 버린 형광등이 나를 덮치는 상상, 휴대폰 배터리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방 안에설이, 그것도 고어물 심상들이 가득 찼다. 아무래도 환기가 필요하다.


나의 도망 때문이고 욕심 때문이다. 이만큼 크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못 살아서다. 스스로에게 무례한 욕심라는 것 잘 안다. 그런데도 있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항의하고 이름도 모르는 이에게 혼잣말로 욕을 하고 가족을 들먹거리고 내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척하면서 자신을 학대한다.


울자. 마음껏 울어보자, 해도 그거 잘 안 된다. 그러면 소리라도 지르자, 하는데 할 만한 곳이 없다. 도무지 없다. 아무래도 구제불능이다.


그게 정답, 아니 정답이라 불러야 할 오답 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못 돼 먹었다고 여기니 내 모습도렇게 보일 수밖에.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고 자꾸 그런다. 마음속 신이, 눈에 담아 뒀던 풍경이, 사랑하는 가족이, 당신의 과거가, 나의 오늘이.


하룻밤 사이 선 결심을 느낀다.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또 너의 행복도 포기하지 않게 하겠다고. 내가 학대를 즐기는 사람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냥 더 고통에 민감했던 나이므로, 그러니 보이는 것을 외면하지 말자고. 발견한 사람이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


다 틀려 먹었나 싶어도 여기 나 있다, 그렇게 날 부르는 무엇이 있다. 고개를 돌려 목소리를 찾는다. 뒤틀린 세상에서 착하게 사는 거 포기하려 했는데, 소심하게 받은 인사를 허공에 건넨다. 근데 또 착한 건 뭐람. 오늘도 세상이랑 싸우려 손을 들었다 악수를 청한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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