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성숙하게
한쪽 날개가 엄지손톱만 한 나비였다. 길바닥 벽돌 사이에 피어난 노란 꽃 주위를 하얗게 맴돌았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바람을 피해 고개를 돌리다 발견했다. 조그만 것이 조용히 날갯짓을 했다.
강풍을 이겨낸 따스한 움직임에 놀란 내 마음은 깔보는 무시였다. 얇은 날개를 지녔어도 그것은 성체였다. 다 자란 네게도 신이 부여한 책무가 있을 텐데, 나의 무지를 용서 하길. 엄혹한 공기를 갈라 생을 이어가는 뚜렷한 의지를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
봄은 세차게 찾아왔다. 냉탕에 온수를 틀어놓은 듯한 섞이지 않은 골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역풍에 괜스레 서러워 홀로 있다 여겼던 스스로를 바삐 탓했다. 나는 결코 혼자 살아남지 않았다. 생의 무게가 하늘을 메운 뿌연 먼지만큼 지나치게 느껴지던 날이었는데, 우연히 지켜본 하얀 날갯짓에서 이상한 위로가 풍겼다.
어른 노릇이 무엇일까 뜬금없이 자문하던 지난 일주일이 떠올랐다. 가끔은 어른 역할을 어리숙한 내가 맡는 바람에 소꿉놀이를 망쳐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춘기인가. 성인이 사춘기라니 무슨 말이냐 묻는 다면, 봄 아닌가. 생각에 봄이 찾아오는 날이 꼭 정해져 있나. 있다면 계절 따라 흐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른 1, 어른 2, 이렇게 해서 역할놀이를 주고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적절한 단어를 구사하고 여러 상황에 대처하며 경험 많고 잘 기능하는 사람이다. 사회적 인간답게 예의를 갖춰서, 상대 입장을 고려해서 어른답게 잘 흉내를 낸다. 휴, 오늘 하루 적절히 처신했다. 근데 이게 어른스러운 걸까.
'어른스럽게'는 무슨 의미일까. 벌써 삼 개월 하고도 며칠이 지나 봄이 오고 있지만 올해도 여전히 모르겠다.
나비의 일생은 인간에 비해 매우 짧다.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이 되고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에게는 '나비'가 진실로 '성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성인은 완성이 아니다. 진행형이고 여전히 들락날락한다. 어린이였다가 어른이 되었다가. 그러고 보면 어른은 눈치싸움이다. 기류를 읽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면 어른 취급을 못 받는다.
중심 잡기 놀이를 해봤을 것이다. 두 팔을 벌리고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민다. 미끄러지지 않게 발가락에 힘을 꽉 주고 시선을 멀리 둔다. 그럼에도 떨어진다. 쉽지 않다. 중심을 잡는 게 뭔지 알고 익숙한 개념이어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 몸에 체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속상하진 않다. 아쉽긴 하지만 놀이니까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익숙해질 때까지 좀 더 노력하면 그만이다. 그럼 우리도 그렇게 살자고 하면 안 될까.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어디 덧나냐고 채근하고 싶다. 너무 이른 시기에 완벽한 인생을 살라고 재촉하지 말고 조금만 여유를 갖게 해 달라고. 나답게, 내 속도로 배우고 익히고 싶다고 말이다.
어린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냥 작은 어른으로 보았던 때가 있었다. 인간을 기능하는 존재로만 봤다는 의미다. 그래서 아동인권이 생긴 이후로는 아이들은 사회에서 노동과 교육 측면에서 보호받는다. 그런데 잠깐, 그렇다면 어른은?
왜 어른은 보호받지 못할까. 어른은 기능하는 생물학적 존재로 그대로 남아있어도 된다는 뜻일까. 성인이 된 우리는 왜 어떤 역할을 해내야만 쓸모 있는 존재라고 불릴까.
어른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낫다. 나이를 먹어서 법적 성인이 되었다는 표현보다,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어른보다 성숙이 좋다. 나비가 번데기를 거쳐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봄과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나도 끊임없이 사춘기를 겪다가 성숙한 사람으로 남아서 살다 가고 싶다.
자격을 갖춘 승용차보다 목적지에 도달할 버스를 기다리는 설렘이 좋다.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나도 이 사람들과 같이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좋다. 대화가 오가는 카페에 앉아 사람들의 말소리와 아이들의 웅얼거림을 들으며 책 사이로 비추는 약한 햇볕을 보는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구절을 받아쓰고 직원의 호의에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가 부족할 때 옆자리를 내주는 친절을 베푸는 순간이 좋다.
나답게 화내고, 웃고, 울고, 대화하련다. 그리고 좀 더 성숙하게 화내고, 웃고, 울고, 대화하겠다. 살아가자면 그렇게 살아가야지 나는 어른 노릇 싫다.
어찌 되었든 생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