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와 상수는 갑작스런 화재 사건에 휘말린 은총의 죽음을 각자의 삶에서 받아들여야만 했다. 무엇도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인생은 그렇게 순간이라는 단절을 가져오고, 각자에게 무언가를 남겼다. 그것을 잊지 못하고 그것과 동행하였던 그들은, 때문에 서로 만나도록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서로가 남긴 상흔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의도했든 아니했든 각자는 각자에게 상처와 흔적을 남긴다. 상수가 집과 차에 서로 다른 규칙을 부여했던 이유, 경애가 그토록 바깥 세계에 냉소적으로 굴었던 이유, 상수가 '언죄다'를 운영했던 이유, 경애가 방을 비워뒀던 이유.
애석하게도 프랑켄슈타인의 도입부와 같다
경애가 사무실에 남긴 실락원의 한 구절을 읽는 순간, 고통은 만인의 공통어이자 지극히 주관적인 사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경애는 상수와 다른 방식으로 삶을 그렇게 이겨내 가고 있었다. 저주하고 원망하는 그 삶과 싸워가는 경애와 달리 상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외면한 채로 죄가 없다, 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나에겐 어떠한 상흔이 있나. 그리고 누구에게 상흔을 입혔나. 과연 나는 은총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총이 있으라, 는 은총의 말장난, 혹은 헤어지는 인사가 기억 속에만 남겨질까 봐 두려웠던 그들처럼 은총을 차 속에 가득 담았을지도 모른다. 또는 '은총'이 채웠을지도 모를 곳을 비워두고 살았을지도 모르고. 누군가의 죽음이 이처럼 강하게 다가올 때 나는 누군가와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잠시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면, 그러나 그것이 죽음이라는 단절이 아니라면, 상처로 남겨지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그럼에도 우린 죽음 앞에서도 기억을 공유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경애(敬愛)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