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인간으로 살기
신체화 증후군에 관해서는 진작 얘기했기에 뛰어넘고 가겠다.
나는 내 몸이 이렇게 반응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미미한 진동에도 반응하는 복통과 배변욕은 사회적 동물인 나를 민감하게 만들었고 악순환을 일으켰다.
밖에 나가기 싫었고 사람들과 만나는 게 꺼려졌다. 멀리 차를 타는 게 두려워졌고, 조금이라도 관계가 먼 사람들과 만남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내 배는 조용해질 날을 찾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나의 몸이 지나치게 방어작용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신체화 반응이라는 용어를 배우기 전까진 난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나서려면 나는 기차 시간표를 알아봤다. 그렇게 많이 고속열차를 탔던 시절도 없다. 조절할 수 없는 배변욕과 복통을 사회적 시선 내에서 처리하려면 그곳을 다스릴 곳이 필요했다. 바로 화장실이었다. 그때쯤 난, 한국의 교통수단에 불만을 가졌다. 화장실이 없는 고속버스라니 너무 싫었다.
간혹 시내버스를 오래 타거나 고속버스 말고는 도착지에 갈 수 없는 날이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최선의 최선은 노래였다. <바이올린을 위한 밤의 노래>라는 클래식을 들으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매일 아침마다 먹는 세 개의 알약이 나를 사회적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흥분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하면 배가 아파오고 화장실을 찾게 된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모든 일에 명상하는 자세로 임한다.
그렇게 겨우 사회의 일원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