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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희 씨는 노란 의자 위에 판다 곰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네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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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를 앞두고 있는 시간이었다. 선희 씨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재빨리 다녀오겠다 마음먹었다. 노면에 짓이겨지는 바퀴소리가 들린다. 민감해진 귀를 애써 무시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조용히 걸어서 분리수거장에 도착했다. 노란 의자에 커다란 판다 곰 인형이 놓여있다. 우선 인형을 치우고 의자 위에 법전을 쌓아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상한 기시감에 이끌려 인형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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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 씨는 누군가를 의심해야만 했다. 혹시 기훈 씨가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다. 노란 의자는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다. 분명 화가가 칠한 흔적이 보이는 말끔한 작은 의자다. 가져다 놓은 것도 분명 화가 양반 짓일 테고, 물건을 가져다 두었다가 다시 가져가는 고약한 버릇도 그 화가 짓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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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 씨는 계획을 세웠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쓰레기차가 지나가기 전에 현장을 덮치면 된다. 판다 곰 인형이 버려지기 전에 주인이 나타날 거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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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잔 슬기 씨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허둥지둥 나가 본 놀이터의 노란 의자 위에는 이제 인형이 아니라, 두꺼운 법전이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일까 눈을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