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드는 행복감

연말 콘서트-폴킴

by 쓴쓴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아닌가. 좋아하는 노래들의 가수인가. 이 분리 불가능한 대상을 생각할 때면 굳이 사람의 이성을 벼려야만 할까, 때로는 무딘 대로 그 느낌을 놓아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마음껏 웃거나 부르지 못했다. 그게 후회가 될 것 같다. 처음 가는 콘서트이기도 했고 실제로 내 앞에 좋아하는 이가 서 있다는 몽상 같은, 현실과 분리된 느낌을 마주하니 약간의 해리 증상을 보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조용한 새벽을 두드려 이 글을 지어내는 까닭은 참 고요하고도 신이 나는, 낯을 가리는 어린이 같은 내면에 있다.


아주 긴 꿈을 꿨다. 앞부분은 기억의 필름이 생략해버려서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후반부를 간신히 붙잡고 이 기분을 유지하려 애쓰다 보니 내가 행복했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콘서트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고 그 현장의 나를 충만한 행복감을 다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영혼으로 두고 나왔음에도 말이다.


꿈의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원래 엮어내려 하면 말이 되지 않으니. 다만 몹시 내가 당당했음을,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삶이 주는 고난을 어떻게든 피하려던 마음이 기지개를 켜, 마침내 번쩍 손을 들었다는 점까지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이 새벽을 놓지 못하는 잔잔한 충일감이다.


이러한 감정의 시간차가 난 안타깝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런다. 현장에서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스스로도 채 느끼지 못한 마음의 미소를 찾아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와 보니 빛과 소리의 파동으로 충만했던 그 시간이 좀 전의 것보다 더 꿈처럼 느껴져 늦게 아쉽고, 그립다.


그러기에 나는 행복감을 더 길게 가질 것이다. 누구의 감정보다 조금 더 길고 가늘게, 마치 솜사탕의 설탕 자국처럼 계속 이어져 마침내 뭉쳐질 것이다. 나는 이것을 그 만들어진 목적대로 조금씩 뜯어서 천천히 맛 볼 예정이다. 입 안에서 사그라드는 달콤함에 아쉬워하지 않고, 내 손에 들린 보랏빛 행복감에 감사할 것이다.


연말을 잘 보내었다 싶다. 나에겐 스릴 넘치는, 태풍급의 감정이 넘실대는 그런 경험은 앞으로도 쉽게 찾아오지 않겠지만, 어쩌면 그것이 나의 생물학적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매 번 이렇게 꿈과 자신도 모르게 띄어지는 뜬금없는 미소를 찾아내면 된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 아름답다 여기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시간을 되돌리는 고고학의 심리와 아이와 같은 밝은 관찰력만 유지한다면, 나는 남들보다 더 오래 행복의 총량을 나눠 쓸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