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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Feb 25. 2020

그네의자

만남이 무섭다

이십 분 정도 걸어, 동네에서 벗어나면 아주 큰 운동장이 나온다. 대학교 시설이지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종종 산책하러 나오곤 해서 다양한 나이 대의 사람들이 보이는 장소다. 얼마 전부터 이곳의 경주로를 따라 몇 바퀴 돌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어서 이것이라도 체력 관리라고 하는 셈이다.


요 근래 날씨가 참 화창했다. 비로 물든 오늘 밤과는 다르게 쾌청한 느낌을 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익숙해진 마스크의 코 부분을 잠깐 내릴 정도로 맑은 공기였다. 조심스러운 행동이었기에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앉는다. 아, 하늘을 향한 눈길과 맞아떨어지는 후각이었다. 금세 코를 다시 덮었지만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들어 올린 다리와 흔들거리는 그네의자의 심상이다.


저물어가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저 방향이 서쪽이구나, 하며 오늘 하루 무엇을 희망했었나 떠올린다. 땅을 박찬다. 왔다 갔다 하는 의자에 앉아 그네를 타는 즐거움은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하며 궁금해한다. 그리고 이 놀라운 발명품은 누가 고안해냈을지 의아해하며 감탄한다. 그네를 만든 것은 놀랍고 의자를 생각해낸 일은 대단하지만, 두 존재의 합성은 즐겁다.


발을 굴려 다시 속도를 붙인다. 곧잘 움직이는 이 간단한 기계가 마음에 들지만 저녁이 더 늦어지기 전에 집에 가야 한다. 알맞은 식사도 체력 관리니까 놓치면 안 된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 덕분에 마음이 벅찬다. 무엇을 고를지 왔다 갔다 하는 심적 고뇌의 즐거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무언가가 서로 만나 즐거워졌단다.


그러니 즐겁지 않다면 만나지 못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만나야 할까, 재차 묻는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내 밖의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먹을 것이나 즐길 것일 수도 있고 마스크 너머의 신선한 공기일 수도, 이 밤에 내리는 차가운 빗방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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