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이루었던 책을 마음속에서 지운다.
책을 디디고 올라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은 잘못된 비유다. 책은 분명 디딤돌이 되어주지만 실은 징검다리와 같아서 사이사이 비어있는 부분은 알아서 채워야 한다. 물론,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징검다리의 비유를 조금 더 이용하자면 책과 책 사이가 벌어져 다음 걸음을 이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또 다른 돌다리를 찾아 두드려보고 건너가게 된다면 운이 좋은 경우겠지만, 때론 다리 아래로 내려와 좀 더 낮은 개울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물에 젖은 발과 피부에 닿는 물결 때문에 조금은 난감하다. 물살이 느껴지는 순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왜 여기까지 왔나, 돌아갈 수는 없었는지 고민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누군가의 수고가 이 디딤돌을 놓았을 것이고, 내가 걷는 물속은 그 수고가 미치지 못한 곳이라고. 그제야 나는 무섭다. 과거의 자취를 밟다가 다시금 무언가 나타나길 바라는 나는, 다음 디딤돌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백범 선생은 그런 이유로 눈길을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