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네 '맛집'을 갔었다. 이모의 소개로 방문한 그곳은 주변 일터에서 노동을 하시는 분들의 주요 단골집인 것 같았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살집이란 거의 없는 마른 중년 남자들이 소주를 반찬 삼아 국물을 후루룩거리고 있었다.
입석 식탁 여섯 개, 좌식 식탁 네 개 정도였던 보통 크기의 음식점이었으니 바로 옆자리 아저씨들의 대화 소리는 쉽게 들릴만도 했지만, 실로 조용했다. 덕분에 주문한 지 얼마 안 돼서 나온 짬뽕의 빨강에 정신을 쉽게 팔았더랬다.
근 한 두 달 피곤했고, 혓바닥에 상처도 나서 매운 국물 먹기가 꺼려졌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니, 며칠 새벽잠을 이루지 못해 누적된 피곤이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낮잠을 자기보다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괜스레 뭔가 뿌듯한 날이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육체노동만 했다 하면 드러눕는 나는, 낮에 술 뚜껑을 까는 행위가 어떻게 찌뿌둥한 몸과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지 미처 알지 못한다. 상상해보건대,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내기에 다소 적절한 일일 거라 보는 정도다. 맛집답게 빨간 국물과 면발, 여러 고명들의 조합이 분명히 좋았으니 만족감에 관하여는 조금 유추해볼 수 있기도 하다.
분명히, 경험은 다 공유될 수 없으므로 비슷한 상황일지라도 상대방의 즐거움을 상상해본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마시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그분들의 '술을 즐김'을 이상하게 보지도 않으므로 입을 다물게 된다.
그렇게 찌푸린 미간을 나의 행복을 표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고, 타인의 행복을 침범하는 데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최소한, 맛집의 짬뽕을 잠깐이라도 공유하는 기분을 느꼈고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각자만의 피로도 있고 행복을 찾는 방법도 있을 것이며, 정작 같은 장소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게 사람 사는 모습일 수도 있지만, 나도 적절한 만큼의 짬뽕 한 그릇 정도는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감사한 일일 테다.